서랍 깊숙한 곳, 잊고 지내던 작은 종이상자를 꺼내어 연다.
오래된 서류와 영수증 타래 사이에서 모서리가 비스듬히 구겨진 모노톤의 엽서 한 장과 빛바랜 티켓 조각이 손끝에 걸려 나온다. 종이 표면에 매캐하게 남아 있는 시간의 냄새. 그 촉감을 따라가다 보면, 까맣게 잊고 살았다고 믿었던 옛 사람들의 얼굴과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서툰 대화의 파편들이 새벽녘 안개처럼 서서히 수면 위로 불어오른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의 세계를 경계 없이 침범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대 초반의 나는 관계의 밀도에 극도로 집착했다. 좋아하는 사람과는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믿었고, 상대방의 일상과 감정, 심지어는 말하지 않은 비밀까지도 온전히 내 손안에 쥐어질 때에야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나의 우울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 진실함이라 여겼고, 상대의 그늘을 헤집어 확인하는 것이 깊은 애정이라고 착각했다.
그것은 흡사 고슴도치들의 지독한 안간힘이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더 바짝 다가설수록 나의 날카로운 가시가 상대의 살점 깊숙이 박혔고, 상대가 아파하며 몸을 비틀 때마다 나 역시 그 가시에 찔려 피를 흘렸다.
"너는 왜 항상 너 생각만 해?"
"미안해, 그럴 뜻은 아니었어."
화가 난 목소리 뒤로 따라붙던 조급한 변명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끌어안았지만, 결국 그 포옹이 서로를 천천히 죄어오는 밧줄이 되어버렸던 순간들. 우리는 왜 그렇게 온전히 서로가 되려고 애썼던 것일까. 타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상대를 나의 일부로 끌어들이려 했던 욕심이 결국 가장 아끼던 관계를 사분오열 찢어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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