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부터 하던 제가, 이제는 일정을 가장 신경 씁니다
"강사님 첫 수업이 언제예요?"
전 온라인 게임에서 일이 몰린 날, 후배랑 할 일 목록을 펼쳐 놓고 제가 제일 먼저 한 질문이에요.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날짜부터 물어본 거죠.
일이 몰리면 전부 중요해 보여서, 중요한 순서로는 줄이 안 세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뭐가 중요한지보다 날짜를 먼저 봐요.
처음부터 이렇게 한 건 아니에요.
예전엔 쉬운 일부터 하라는 글을 쓰기도 했었는데요 ㅎㅎ
2024년 11월에 「일을 잘한다는 것 : 우선순위」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요지는 간단했어요.
어려운 일은 잠깐 내려놓고, 쉬운 일부터 쳐내라.
이름도 붙였어요. 「순서 파괴」.
시험 볼 때 쉬운 문제부터 푸는 것처럼, 끝낸 일이 쌓이면 부담이 줄어든다고 적었죠.
마지막 줄은 "여러분의 업무에 더 큰 행복을 더해줄 것입니다"였고요.
(지금 읽으니 좀 민망하네요.)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그 글에는 날짜가 없더라고요.
쉬운 일, 어려운 일은 있는데 급한 일, 아직 한참 남은 일은 없었어요.
그 빈자리를 알게 된 건 1년쯤 뒤였어요.
힘들다고 말하러 가서, "요청은 없습니다"라고 하고 나왔어요
지금은 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어른들이 듣는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회사에 있었어요.
과정 하나가 몇 달씩 이어지고, 저는 그런 과정을 한꺼번에 열 개 넘게 맡고 있었어요.
저는 원래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런 제가 처음으로, 위에 계시던 리더분께 힘들다고 말씀드리러 갔어요.
가기 전에 이런 질문이 올 것 같았어요.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뭐가 힘든데?"
그래서 세 가지를 적어 갔어요.
첫째, 맡은 과정이 많아서 모셔 와야 할 강사님이 너무 많았다. 수업 27개 중에 18개를 채운 상태였다.
둘째, 연차를 쓰고 싶어도 쓸 틈이 없는 일정이었다.
셋째, 체계가 안 잡힌 부분을 바로잡으면서 다른 일까지 같이 챙기다 보니 힘에 부쳤다.
그런데 다 말하고 나서 제가 마무리한 말은 이거였어요.
"그냥 열심히 하고 있구나, 그렇게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요청은 없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러 가서, 요청은 없다고 하고 나온 셈이죠.
"조정하는 것도 일을 잘하는 거예요"
그 리더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감은 넘겨도 괜찮아요. 안 되겠으면 일정 밀어 달라고 말을 해야 돼요."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붙이셨어요.
"지키는 것도 물론 일을 잘하는 거지만, 그걸 조정하는 것도 일을 잘하는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모든 걸 제날짜에 다 해내는 것만 일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날짜를 옮기는 것도 일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2주 뒤, 이번엔 제가 "신경 꺼도 돼요"라고 하고 있었어요
그로부터 2주쯤 지난 아침이었어요.
같이 일하던 후배랑 할 일 목록을 펼쳐 놓고 하나씩 짚었어요.
첫 줄은 새로 모신 강사님 계약이었어요.
강사 등록이랑 계약이 강사님 첫 수업 전에 다 끝나 있어야 하는 일이었죠.
그래서 맨 위의 그 질문부터 했어요.
"강사님 첫 수업이 언제예요? 2주 안이면 좀 서둘러야 해서요."
확인해 보니 11월 25일, 딱 2주 뒤였어요.
그 날짜에서 거꾸로 세어서, 우리 쪽 마감은 일주일 앞인 18일로 잡았어요.
거의 다 해 둔 정리 작업 하나는 "이건 5분이면 끝나요" 하고 바로 넘어갔고요.
금요일 수료식이 끝나야 챙길 수 있는 일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건 지금 적어 놓기만 해요. 금요일 끝나고 해도 안 늦으니까, 그때 저랑 같이 해요."
목록 맨 끝에는 12월에 시작하는 과정 두 개가 있었어요.
개강까지 한 달도 넘게 남은 과정이었죠.
"이건 너무 많이 남았어요. 신경 아예 꺼 버려요. 후순위로 밀어도 돼요."
그날 정리는 간단했어요.
날짜가 코앞인 과정 세 개만 붙잡고, 나머지는 맨 뒤로.
일이 줄어든 건 아니었어요.
지금 머리에 올려 둘 일이 세 개로 줄었을 뿐이죠.
그러고 보니 2주 전에 제가 들은 말을, 이번엔 제가 후배에게 하고 있더라고요.
요즘 제가 목록을 다시 적는 순서
그 뒤로 일이 몰리면 이 순서로 목록을 다시 적어요.
1. 일 이름 옆에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날짜부터 적어요.
2. 그 날짜에서 거꾸로 세어, 제 마감을 앞당겨 적어요.
3. 5분이면 끝나는 일은 그 자리에서 끝내요.
4. 날짜가 한참 남은 일은 지우지 않고, 적어 둔 채 머릿속에서만 꺼요.
5. 그래도 안 되는 일은, 날짜를 옮겨 달라고 먼저 말해요.
올해 2월에 쓴 「본질에 다다르는 법」에 이런 문장을 적었어요.
"모든 게 중요하다는 말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같더라구요."
그렇게 써 놓고도 막상 일이 몰리면 전부 중요해 보였는데, 옆에 날짜를 적으면 뭘 먼저 할지가 보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쉬운 일부터 하는 습관을 버린 건 아니에요.
날짜로 순서를 정한 다음에도 손이 안 가는 날이 있거든요.
그럴 땐 「요즘 배운 것들」에도 적었던 것처럼, 30분이면 끝나는 작은 일로 쪼개서 하나씩 지워요.
지운 줄이 늘어나는 게 보이면 다시 일할 마음이 들더라고요.
혹시 지금 할 일 목록에 보고서, 기획안, 회의 자료가 나란히 적혀 있다면, 셋 다 「지금 당장」처럼 보일 거예요.
옆에 날짜를 하나씩 적어 보시면, 그중 하나쯤은 오늘 안 해도 되는 일일지도 몰라요.
솔직히 저는 아직도 자주 틀려요.
급해지면 날짜보다 손이 먼저 쉬운 일로 가거든요.
그럴 때마다 목록을 다시 펴고, 날짜부터 적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