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것일까, 낯선 것일까
"성준 선생님께서는 TCI 검사를 해 보니 자극 추구 성향이 90점을 넘을 정도로 높으시고, 위험 회피 성향이 50점 정도 되세요. 일반 교사에서는 나타나기 힘든 경향이에요. 그래서 에너지를 쓰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지시겠지만, 다른 분들은 따라가기 힘드실 수 있어요. 극단적으로는 거부 의사도 표현하실 수 있고요. 제가 말려도 에너지를 쓰실 분이지만, 다음에도 쓰러지실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안 되는 방법을 생각해 보셔야겠어요. 선생님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분들께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5년 차쯤 되면 매너리즘이 온다고 하셨다. 성준도 그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교재 연구나 학생 상담보다 예산 사용 및 기안, 공문 처리 등 교사는 학생 지도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다. 수업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은 생활 지도 시간이 아니다. 특히 고등학교라면 더더욱.
중학교로 전보가 된 성준은 고등학교 근무 시기에 학생들에게 발견된 여러 문제점이 왜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단추의 문제. 특히나 요즘처럼 고등학교 1학년 과목을 수능으로 보게 된 학생들이라면 중학교 시절의 지도 및 학습 요령이 고등학교에 반드시 영향을 준다. 분명 수능 난이도는 이전 교육과정에 비해 낮아질 것이고, 학생들은 선택 과목을 수강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수능 준비는 해야 한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한답시고 1학년 과목을 다시 공부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학교에서 실시하는 각종 활동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자기 관리 능력'이라는, 시험에서는 단 한 문항으로도 나오지 않는 능력이 대입에 영향을 확실히 주는 구조다. 그리고 이 능력은, 가정 교육과 생활지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이 매우 줄어들고 있음에도 말이다.
성준은 이전에 대입 설명회를 다니며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선정된 학생들에 대한 칭찬(혹은 충성도)을 여러 대학교에서 하는 것을 들었다. 대학교는 학종 학생들을 놓칠 리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선생님들의 희망과는 달리 학종 인원은 늘어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단순한 문제 풀이 활동만을 하는 수능과는 다소 다른 지도가 필요하기에, 기존의 학생 지도 방법과 교재 연구 자료가 먹히지 않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고 수치화되지 않은 기록이 학생의 앞날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학종을 반대하는 의견의 주된 근거였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학종과 맞물려 돌아가는 제도이기에, 고교학점제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거스르기 힘든 정바카라이다.
기존의 입시 제도에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수치화된 뭔가만 다루는 인생은 사는 게 아니지 않나.
'수치화'라는 사고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수치화되지 않은 개념을 다루는 능력이 퇴화한다. 생각해 보면, 수치화는 대개 '조절, 통제, 선발'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많지만 대개 수치화를 쓰는 과정은 그것이 뒤탈을 방지하고, 논리적인 결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필요한 방법이지만, 문제는 과의존이다. 사람을 판단하는데 숫자라는 지표에 과의존했고, 그것이 '사람의 숫자가 바뀌면 사람의 가치도 달라진다.'라는 믿음을 낳았다. 특히나 이런 문제의 틈새를 파고드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막연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교실, 학교에 미쳤다. 교칙 위반과 지도 불이행도 비슷했다.
교칙은 헌법 등과 같이 엄청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짜여 있지 않다. 왜냐하면 '법의 연습 버전'이니까. 그래서 '법을 어기면 이런 바카라임을 집니다.'라는 체험판과 같다. 지도 불이행도 마찬가지다.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거나 그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람은 사람 간의 마찰을 자주 겪는, 쉽게 말해 '인간관계의 체험판'이다. 법과 인간관계의 체험판. 만약 그때마다 배우거나 행동을 고치는 대신 '억울하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냐.'라고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것을 주변의 성인이 고쳐주지 않는다면 그는 성인이 된 뒤에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최종적으로는 부모님에게로 다시 돌아가거나 고립된다.(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어떻게든 사용자의 정당성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의 피해자들이다.
드라마 '환혼'을 보진 않았지만, 단 한 컷의 사진으로 접한 것임에도 인상 깊은 대사가 있었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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