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기능의 전유
성준의 원룸 구석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소박한 수집품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콤팩트한 사각 접이식 테이블들이었다. 가구점에서 번듯한 가격표를 달고 나온 신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주말마다 동네 중고마켓 앱을 들여다보다가 골목 어귀에서 단돈 3천 원, 5천 원을 주고 손에서 손으로 건네받았거나, 원룸 단지 분리수거장 옆에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는 삐뚤빼뚤한 메모와 함께 놓여 있던 물건들이었다.
버려지거나 헐값에 넘겨진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테이블 상판 한가운데에는 전 주인이 직접 스텐실로 새겨 넣었거나 제작 당시에 인쇄된 간결한 영문 문장 하나가 저마다 박혀 있었다. 흐린 회색 바탕에 무심하게 적힌 'maybe', 짙은 남색 코팅 위로 별빛처럼 새겨진 'fly me to the moon', 푸른 고래 그림 곁에 자리 잡은 'a dream of whale', 그리고 따뜻한 크림색 상판에 흘려 쓴 'life is beautiful'. 다리를 접어두면 두께가 3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이 테이블들은 그저 바닥에 펴놓고 라면을 끓여 먹거나 노트북을 올려두고 메일을 확인하는 조촐한 자취생의 밥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준에게 그것은 매일의 기분에 따라 방 안의 표정을 바꾸어주는 작은 캔버스들이었다.
화요일 저녁, 퇴근 후 외투를 벗어던진 성준은 거실 소파 옆 하얀 콘크리트 벽 한가운데 시선을 멈추었다. 이전 세입자가 무거운 괘종시계나 대형 액자를 걸어두었는지, 벽면 한복판에 굵고 긴 녹슨 쇠못 하나가 흉물스럽게 박혀 있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엣가시였던 못이었다.
성준은 도구 상자에서 묵직한 장도리를 꺼내 들었다. 장도리의 쇠 지렛대 갈퀴를 못 대가리 틈새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못은 콘크리트 깊숙한 곳까지 억세게 물려 있었다. 성준은 장도리 자루를 잡고 체중을 실어 지렛대 원리로 단번에 젖혀 당겼다.
뿌드득, 찌지직.
경쾌하게 쑥 뽑혀 나올 줄 알았던 못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렛대의 곡면 머리가 벽면을 짓누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못 주변의 낡은 합지 벽지가 동그랗게 찢겨 나가며 안쪽의 푸석푸석한 석고 가루가 바닥으로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못은 뽑히지도 않은 채 45도 각도로 흉하게 꺾여버렸고, 그 주위로 500원짜리 동전보다 더 크게 찢겨 펄럭이는 벽지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
하얀 벽 한가운데 처참하게 뜯겨 나간 벽지 흉터는 시선이 닿을 때마다 신경을 긁어대는 끔찍한 불협화음이었다. 여기서 펜치나 쇠지렛대로 더 용을 썼다가는 벽지가 손바닥만 하게 뜯겨 나가며 방의 꼴만 더 흉측해질 게 뻔했다. 성준은 한숨을 쉬며 장도리를 내려놓았다. 박혀서 꺾여버린 못과 뜯겨나간 벽지 상처를 지우개로 지우듯 없앨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지저분하게 망가진 자리를 더 큰 무언가로 온전히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성준은 방구석에 포개둔 접이식 테이블들을 훑어보았다. 오늘은 짙은 밤하늘색 바탕에 은빛 필기체로 'fly me to the moon'이라 적힌 상판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건너편 골목에서 무료 나눔으로 얻어왔던 테이블이었다. 성준은 테이블 다리를 단단히 접은 채 들어 올려, 뒤쪽 철제 다리 프레임을 꺾여 튀어나온 못 대가리에 걸쳐 보았다. 하지만 못 머리가 너무 짧았고 그나마도 휘어 있어 굵은 파이프 다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허공에서 위태롭게 덜컹거렸다. 손을 떼는 순간 바닥으로 떨어져 마루를 찍을 게 뻔했다.
성준은 턱을 매만지며 옷장 문을 열었다. 옷걸이 봉 한구석에 걸려 있던 검은색 철제 바지걸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로 봉 위에 두 개의 강철 집게가 달린 형태였다.
사실 성준은 평소 이 바지걸이를 몹시 싫어했다. 바지 허리 폭에 맞추기 위해 집게의 위치를 좌우로 옮길 때마다 철사 봉을 사납게 긁으며 나던 끼기긱, 찌직 하는 날카로운 소음 탓이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 귓전을 때리는 마찰음도 끔찍했지만, 뻑뻑하게 걸리며 손가락 마디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텁텁하고 거친 진동은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그 불쾌한 감각이 싫어서 성준은 정장 바지를 걸 때도 이 옷걸이를 피해 다른 평평한 옷걸이를 쓰곤 했고, 언젠가 분리수거 날에 미련 없이 버리리라 마음먹고 옷장 가장 깊숙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벽 앞에 서서 바라보니, 그토록 싫어했던 바지걸이의 물리적 구조가 뜻밖의 완벽한 해답으로 다가왔다.
성준은 바지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지걸이 상단의 고리를 벽에 박힌 꺾인 못에 딸깍 걸었다. 찰랑. 못의 꺾인 각도 덕분에 고리는 미끄러지지 않고 견고하게 물려 늘어졌다. 벽면 아래로 가로 강철 봉과 양쪽 집게가 흔들림 없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