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론 - Chapter 3. A - Action

도구의 기능

by천원

토요일 오후가 되자 베란다 창으로 비껴 든 햇살이 거실 마루 끝을 길게 채웠다. 성준은 일주일 내내 미뤄두었던 창고 방 정리를 위해 셔츠 소매를 팔꿈치 위로 걷어 올렸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문을 열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쑤셔 넣어둔 물건들이 허리 높이까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안쪽에 자리 잡은 반투명 플라스틱 수납함 서너 개를 차례로 끌어내 거실 바닥 한가운데로 날랐다.


가장 부피가 큰 60리터짜리 상자에는 지난겨울에 입었던 두꺼운 모직 스웨터와 목도리, 굵은 털양말,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전자기기 케이블 뭉치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성준은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 계절 지난 옷들을 단정하게 개키기 시작했다. 구김이 덜 가도록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가며 각을 잡았고, 가을용 얇은 셔츠들은 따로 빼내어 옷걸이에 걸었다. 정리를 마치고 옷가지를 다시 상자 안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내용물이 이전보다 훨씬 가지런해졌음에도 워낙 부피가 큰 겨울 외투가 섞여 있어 상자 높이를 2센티미터가량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성준은 상자 덮개를 얹은 뒤 체중을 실어 양쪽 결합부를 딸깍 소리가 나도록 억지로 눌러 닫았다. 팽팽해진 플라스틱 벽체가 안쪽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그 순간, 상자 앞쪽 모서리 하단에서 딱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조용한 거실을 갈랐다.


성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상자를 돌려 살펴보았다. 바닥 모서리 접합선 부근에서 시작된 균열이 뚜렷한 흰색 선을 그리며 위쪽 손잡이 방향으로 15센티미터가량 길게 찢겨 있었다. 겨울철 냉기에 장기간 방치되며 유연성을 잃은 얇은 폴리프로필렌 플라스틱이 안에서 밀어내는 팽창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간 것이었다.


손바닥으로 벌어진 부위를 힘껏 그러쥐어 보았다. 힘을 주고 있는 동안에는 어긋난 단면이 제자리를 찾아 맞물리는 듯했다. 하지만 숨을 고르며 손아귀의 힘을 푸는 순간, 플라스틱 고유의 뻣뻣한 복원 탄성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틈새가 다시 2센티미터 넘게 떡 벌어졌다. 위쪽 손잡이 홈까지 금이 타고 올라가 뚜껑의 잠금 걸쇠마저 맥없이 덜컹거리며 헛돌았다. 이대로 방치하면 틈 사이로 습기와 먼지가 고스란히 스며들 것은 물론이고, 상자를 들어 올려 선반으로 옮기는 순간 바닥 전체가 완전히 주저앉을 판이었다.


맨손으로 쥐고 버티는 완력으로는 이 단단한 탄성의 반발을 이겨낼 수 없었다. 억지로 손에 힘을 주어 누르기를 반복하던 성준은 곧 손을 떼고 거실 TV 수납장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잡다한 공구와 문구류가 정리된 서랍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두께의 묵직한 갈색 박스테이프 롤을 집어 들었다. 폭 50밀리미터짜리 고점착 포장용 테이프였다.


성준은 원통 표면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돌려가며 더듬었다. 팽팽하게 감겨 있는 매끄러운 롤 표면을 손끝의 미세한 감각으로 훑다 보니, 얇게 턱이 진 테이프 끝단의 단차가 지문에 가볍게 걸렸다. 성준은 손톱 끝을 비스듬히 세워 모서리를 살짝 긁어 올렸다. 얇은 비닐 필름이 삼각형 모양으로 찢어지지 않도록 양손 엄지와 검지로 테이프의 전폭을 단단히 쥐고 일정한 힘으로 몸 쪽을 향해 당겼다.


찌르르륵.


건조한 거실 공기를 가르는 마찰음과 함께 팽팽하게 긴장된 점착면이 허공으로 풀려나왔다. 테이프 표면에는 공기와 마찰하며 생긴 정전기가 얇게 일었다. 성준은 서두르지 않았다. 갈라진 틈의 길이보다 양쪽으로 각각 7센티미터씩 여유를 확보하여 약 30센티미터 길이까지 필름을 일정하게 뽑아낸 뒤 롤을 무릎 위에 얹어 고정했다.


먼저 왼손 전체로 갈라진 플라스틱 상자의 외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벌어지려는 두 면의 단차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틈새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수평으로 맞물리도록 힘껏 쥐어 틀어막았다. 단단한 플라스틱이 손바닥 안쪽을 억세게 밀어냈지만 왼팔에 단단히 힘을 주어 고정했다.


그 상태에서 오른손에 쥐고 있던 테이프의 시작 지점을 틈새가 시작되기 7센티미터 아래쪽의 상자 바닥 면에 수평으로 갖다 댔다. 착. 첫 접촉이 이루어지자마자 엄지손가락 지문으로 테이프 끝을 강하게 짓누르며 서너 번 문질러 기초 부착면을 다졌다.


이어 테이프 롤을 쥔 오른손을 위쪽 대각선 방향으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필름에 팽팽한 장력이 걸려 얇은 비닐이 팽팽하게 울리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 팽팽한 긴장을 조금도 늦추지 않은 채, 갈라진 직선의 균열선을 정중앙에 두고 아래에서 위로 단번에 밀착시키며 감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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