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론 - Chapter 1. C - Cleavage

분할과 발생

by천원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바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골판지 택배 상자가 성준을 맞이했다. 며칠 전 주문해 둔 물건이었는데, 겉면에는 배송 트럭을 거치며 묻은 뽀얀 먼지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모서리와 이음매마다 둘러쳐진 누런 박스테이프는 세 겹이나 겹쳐 발라져 있어 상자의 입을 완강하게 다물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무렵의 피로 속에서 이런 포장을 마주하면, 조급한 마음에 손톱 끝으로 테이프 가장자리를 박박 긁거나 상자 날개를 양손으로 쥐고 무작정 힘으로 뜯어내고 싶어 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성준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다. 30대 중반을 지나며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온 경험상, 대상을 완력으로 잡아 뜯으려 하면 테이프는 지저분하게 찢겨 나가며 끈적거리는 자국을 남기고, 상자 종이마저 흉하게 뜯겨 바닥에 부스러기만 흩날릴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매사에 무작정 힘만 쓰는 것은 일의 매듭을 더 복잡하게 꼬이게 만들 뿐이었다.


성준은 입고 있던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 위로 단정하게 두어 번 접어 올렸다. 드러난 팔뚝 위로 단단한 힘줄과 잔근육이 가볍게 긴장했다. 거실 서랍장을 열어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노란색 플라스틱 커터칼을 집어 들었다. 손에 쥐는 순간 가볍고 미끄러운 플라스틱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서두르지 않는 손길로 엄지손가락을 얹어 슬라이더 단추를 천천히 밀어 올렸다.


틱, 틱.


톱니가 걸쇠에 차례로 맞물리는 마찰음이 조용한 거실 공기를 울렸다. 성준은 칼날을 지나치게 길게 뽑아내지 않고 정확히 두 마디만 꺼낸 뒤 멈추었다. 칼날을 욕심내어 길게 빼면 누르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날이 휘어지거나 뚝 부러져 손을 다치기 십상이라는 물리적인 원리를 손끝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쓸 만큼만 나와 고정된 은빛 칼날의 비스듬한 면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듯하게 빛났다.
상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성준은 테이프가 맞물린 모서리에 칼끝을 45도 각도로 가만히 얹었다. 손목에 과한 힘을 주지 않은 채, 상자 가운데에 그어진 틈새를 따라 칼을 가볍게 그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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