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례를 마친 후, 이번엔 서랍 정리와 주변 바닥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을 지도했다.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 볼펜을 분해하거나 샤프심을 갈고, 바카라을 찢어 돌돌 말아 주변 친구들에게 던진다는 제보가 있었던 학생이다.
바카라상 서랍, 사물함 물건을 전부 꺼내고, 학교에서 나눠줬던 폴더를 열어보도록 지도했다. 수업 시간에 분명 폴더의 각 공간의 용도를 지정하는 태그를 직접 지도하며 끼워 넣었는데, 2학기에 열어보니 전혀 끼워져있지 않다. 더불어 과목별 프린터는 정리되어 있지 않고 모퉁이가 찢어지거나 구겨진 상태로 박혀 있었다. 가방에서도 3월, 4월 가정통신문, 학부모님께서 성준에게 쓴 편지도 나왔다. 편지를 펼치자 앞으로 지도를 잘 부탁드린다는 글이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다.
성준은 우선 수업 중에 실시했던 사물함 정리 요령을 다시 가르치기로 했다. 중학교에 와서도 제대로 되지 않은 뭔가가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선생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이 안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시도는 했고, 대부분의 학생은 그 지도를 익혔지만 몇몇은 익히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학생이 교과서를 꺼낸 뒤, 바카라을 가나다라 순서대로 쌓기 시작한다. 교과서 중 바카라의 표지가 멀쩡한 바카라이 얼마 없다. 수업이 자주 들어있는 바카라의 표지는 찢어져 없어지고, 자주 쓰지 않은 바카라의 표지만이 남아있다. 사물함에 바카라이 세워져 있지 않고 눕혀져 쌓인 상태에서 표지와 내용을 함께 잡지 않고 힘으로 바카라을 꺼냈거나, 서랍에 터져 나갈 듯이 바카라을 집어넣고 무리하게 빼느라 표지가 찢어졌을 것이다. 확실한 건, 바카라을 다루는 자세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준은 학생의 필기 상태를 봤다. 낙서가 군데군데 되어 있고 필기는 거의 되어 있지 않다. 간혹 구멍이 뚫린 페이지는 이 학생이 그 수업 시간에 얼마나 지루했는지를 알려줬다.
생각해 보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기 힘든 학생들이 1교시부터 7교시까지, 8시 30분부터 3~4시까지 앉아있는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학교는 어른들이 바카라을 펼치라 해 놓고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되는 내용을 말하고, 쓰라고 시키며 친구들에게 장난 조금 친 걸로 혼을 내는 지루한 곳이리라, 성준은 짐작해 봤다.
성준은 이 학생을 바라보며 또 다른 가설이 떠올랐다. 수업이 이해되지 않고 지루한 것이라면, 당연히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에 반감이 생길 것이고 이는 뭔가를 배운다는 행위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 편하게 주행하는 고속도로 같은 상황도 있지만, 구불구불하고 옆에서 어떤 동물이나 물건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국도 같은 상황도 있으니까. 그리고 뭔가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국도에서 운전을 고속도로에서처럼 하는 것과 유사하다. 벽이 있고, 절벽이 있어도 직선으로 주행하기에 부딪치고, 떨어진다. 하지만 그건 절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도로가 직선이 아닌 게 문제지. 친구들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건, 어쩌면 수업을 듣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는 제법 쉬운 스트레스 풀이일 것이다. 친구들의 약점을 직접 때리거나 말로써 긁어 화나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즐겁진 않더라도 수업을 듣느라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재미있을 것이고, 어느 새인가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학생이 정리에 시간을 쏟는 동안 성준이 생각에 시간을 쏟고, 문득 떠오른 가설은 이것이었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우범지대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성준이 1학기 때 과로로 쓰러지며 했던 생각과 비슷했다. 한 때 SNS에, 더 이상 지도에 실패한 학생을 대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특별한 지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글이 있었다. 특정 학생 한 명을 지도하는데 일반적인 학생 20명 분의 지도를 하는 수준의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면, 20명의 장점과 진로를 알아보고 지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취지 었다. 현장에서도 그 정도의 지도 난이도를 요구하는 학생은 교사의 정신력을 소모시킬 뿐만 아니라 주변 학생들에게도 폭력적인 언행을 행사했다. 어른이 쉬워 보이면 친구는 얼마나 쉬워 보이겠는가.
교육에 실패한 이들의 종착지는, 우선 학부모의 가정이다. 교사의 소진, 학생의 지도 불응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교육에 실패한, 정확히는 슬롯화에 실패한 이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 '교육에 실패했다.'라는 것에는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데 실패했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를 익히는 데 실패했다.'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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