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홍종민Oct 10. 2026brunch_membership's
14장.
환상이 전이를 만든다
상담을 하면서 이상한 경험을 여러 번 반복했다.
분명히 나를 처음 만난 사람인데, 나를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눈 속에 내가 이미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는 예측. 그 기대와 예측이 완성된 채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해했다. 전이 轉移 (Transference). 누군가를 나에게 투사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오래된 선생님. 그 누군가를 나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맞지 않았다. 내담자들이 가져오는 것이 기억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해석, 어떤 재구성, 어떤 환상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기억이 아니라 기억에 대한 기억. 이미 왜곡된 무언가.
나는 그것을 먼저 틀렸고, 나중에 임진수에게서 왜 틀렸는지를 배웠다. 기억을 실제 경험과 환상으로 나눌 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기억은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몸을 가눌 수 없을 때조차 그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당시의 경험은 쉽게 왜곡되어 환상화된다(임진수, 2005: 234).
환상(幻想,Fantasy)으로 이루어진 기억. 내담자가 나에게 가져오는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닐 수 있다. 아버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나에게 옮겨오는 것이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전이는 기억의 전이가 아니라 환상의 전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이 해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다루는 일이 된다. 내담자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 환상은 현실이 된다 —
환상이 그냥 허구라면 별로 문제가 없다. 꿈처럼 잠들었을 때 보는 것이고, 깨면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런데 환상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적인 욕망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사사건건 일상생활에 간섭하여 지각과 기억을 변형시킨다(임진수, 2005: 239). 지각을 변형시킨다. 현실을 보는 눈을 바꾼다. 환상이 렌즈가 되어 나를, 이 방을, 이 관계를 보게 만든다. 내가 실제로 어떤지가 아니라, 환상이 나를 어떻게 읽느냐가 내담자의 경험을 결정한다.
30대 중반의 남성이 왔다. 온라인 게임에서 상사에게 계속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상사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회의할 때마다 의견이 무시된다고. 열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묘사하는 상사의 행동이 너무 일관되게 나빴다. 실수가 없었다. 좋은 날도, 보통 날도 없이 언제나 나쁜 날만 있었다. 인간이 그렇게 일관될 수는 없다. 그런데 기억 속 상사에는 나쁜 날만 있었다.
나는 천천히 물었다. 상사가 잘 해준 적은 없었냐고.
잠깐 멈췄다. 생각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말했다. 있었는데, 그건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고. 속으로는 자기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거기서 보였다. 상사가 잘 해줘도 그 환상이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시당한다는 환상이 너무 강해서, 배려도 무시의 다른 형태로 읽힌다. 환상이 현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상사의 행동은 어떠했든 간에 그 환상 안으로 들어오면 전부 무시로 재해석됐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같은 것이 왔다. 내가 충분히 경청하고 있어도 가끔 지루해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질문을 해도 심문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심문한 것이 아닌데. 환상이 내 행동을 재해석하고 있었다.
전이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을 현재에 옮겨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 경험에 대한 환상이, 현재의 현실을 읽는 방식이 된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 환상 안에서 읽히고 있다.
— 원환상과 욕망의 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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