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그의 과거가 지금 여기에 있다

by홍종민


13장. 그의 과거가 지금 여기에 있다


삼십 대 중반의 간호사가 찾아왔다. 지금은 무직이라고 했다.


병원을 여러 군데 옮긴 것에 자바카라하고 있었다. 수술방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했다. 힘이 들어서 지금은 쉰다고 했다.


50 분 동안 그 사람은 이직 이야기를 했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왜 옮겼는지, 어디가 좋았는지, 어디가 싫었는지. 수술방 이야기도 했다. 남들이 꺼리는 일을 자기가 맡았다. 적성에 맞았다. 집중해야 했다. 잘못하면 환자가 위험해졌다.


이야기는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미끄러졌다.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나는 그 미끄러짐을 따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끄러지는 이야기들 아래에 같은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과거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을, 나는 오래 한 방향으로만 알았다. 지난 일이 지금을 만든다는 것. 그 방향은 반쯤 맞았다. 나머지 반을 아는 데 오래 걸렸다.


두 가지 있음이 있다. 하나는 과거가 지금으로 옮겨와 있는 것. 다른 하나는 과거가 지금 이 방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 오래 나는 앞의 것만 알았다. 뒤의 것을 알게 되면서 상담이 달라졌다. 이 간호사의 50 분이 그 두 가지를 다 보여줬다. 한 사람 안에서, 같은 이야기를 두고, 두 번에 걸쳐서. 한 번은 원인을 향해, 한 번은 소리를 향해.


— 감정의 주소를 거슬러 올라가다 —


프로이트가 전이에 처음 붙인 이름은 '잘못된 연결'이었다. 어린 시절 어떤 대상에게 향했던 감정이 나중에 엉뚱한 사람에게 분출되는 것. 지금 느끼는 감정은 내가 유발한 것이라 확신하지만, 사실은 초기 대상에게서 온 것일 수 있다(마론, 2022: 194).


이 간호사의 자바카라도 그런 주소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주소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감정은 원래 향해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할 때 더 안전한 대상에게 옮겨 붙는다. 받아야 할 사람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가 엉뚱한 곳에 쌓이는 일이다. 지금의 자바카라이 지금의 이직 때문에 생긴 것처럼 보여도, 그 자바카라의 원래 수신인은 훨씬 오래된 어떤 관계일 수 있다. 소급은 그 원래 수신인을 찾아가는 일이다.


마론은 이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심리극에서 익혔다. 현재의 명백한 장면에서 출발해 과거의 잠재하는 장면으로 들어가는 것. 현재 일화에서


역사적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이다(마론, 2022: 229).


오랫동안 이것이 내가 아는 전이의 지도 전부였다. 지금의 감정에는 과거의 원인이 있다.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해가 된다. 원인이 결과를 낳았고, 나는 그 사슬을 되짚는 사람이다.


이 지도는 깔끔하다. 어떤 감정을 만나도 그 뒤에 원인이 있다고 믿으면 길이 보인다. 자바카라을 만나면 자바카라의 출처를 찾고, 이직을 만나면 이직의 뿌리를 찾는다. 상담자는 탐정이 되고, 과거는 풀어야 할 사건이 된다. 나는 이 방식으로 오래 일했다.


— 첫 번째 독해: 이직의 원인을 찾다 —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 자꾸 떠나는 것.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찾으면 길이 보인다. 관계의 반복, 버림의 반복, 인정받지 못한 반복. 소급은 그 원인 하나를 지목한다. 이 사람이 왜 자꾸 떠나는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자바카라도 마찬가지다. 왜 자신을 탓하는가. 그 탓의 최초 장면은 어디인가.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자바카라의 원인이 드러난다. 원인을 알면 이해받은 느낌이 온다.


소급이 주는 것은 진짜다. 원인을 찾으면 안도가 온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겠다는 안도. 그 안도가 상담자에게도 온다. 사례가 풀렸다는 느낌.


그런데 안도와 변화는 다르다. 원인을 알고 안도한 다음, 이직은 또 반복된다. 이해는 됐는데 삶은 그대로다.


대상관계로 이 사례를 읽었다면 나는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자유연상에서 나오는 공통 주제를 짚어주고, 그 주제의 뿌리를 과거에서 찾고, 끝. 증상은 호전된다. 이직의 불안이 줄고, 자바카라이 옅어진다. 그런데 호전이 전부는 아니다. 이직과 수술방과 자바카라 사이에서 공통 주제를 찾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미끄러진 길을 되짚는 것. 확인은 된다. 그런데 확인만으로는 구조가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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