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홍종민Oct 10. 2026brunch_membership's
19장.
전이가 해소될 때
전이가 해소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담자가 더 이상 나를 과거의 그 사람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나를 나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전이가 해소되는 방향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상실을 포함한다.
이 장은 바카라 전체의 마지막이다. 전이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결국 닿는 곳이 여기다. 전이가 해소될 때 정확히 무엇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 일이 내담자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전이를 해석하는 것은 내담자에게 자신을 이해하는 언어를 주는 것이다. 그 언어가 내면에 쌓여서,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눈이 된다. 그 눈이 삶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한다. 과거의 패턴에 덜 끌려다니게 한다.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완전한 자유는 없다. 그러나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삶을 다르게 만든다.
— 전이신경증에서 삶으로 —
이 일을 오래 하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다. 프로이트가 그것을 먼저 써놓고 있었다. 전이는 병과 삶 사이의 중간 영역을 형성하며 그것을 통해서 병에서 삶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이 새로운 상태는 병의 모든 특성을 넘겨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병을 나타내며 모든 부분에서 우리의 개입을 허용한다(프로이트, 1914: 127).
인위적인 병. 내담자의 오래된 패턴이 상담실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 패턴이 나와의 관계에서 작동한다. 그것이 전이신경증이다. 그런데 이 인위적인 병은 특별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 밖에서 일어나는 것에는 개입하기 어렵지만, 이 방에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다.
전이가 해소된다는 것은 이 운동장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나를 과거의 대상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줄어드는 것이다. 과거의 패턴이 여기서 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지금 여기 있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천천히 일어난다. 완전한 해소라는 것은 없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병이 있어야 치료할 수 있다. 전이신경증이 생겨야 그것을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분석이 되어야 해소될 수 있다. 이 순서가 전이 작업의 논리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 좋은 신호다. 그것이 분석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분리의 경험 —
상담 중에 작은 분리들이 계속 있다. 다음 회기까지의 분리. 주말. 취소된 회기. 휴가.
각각의 분리는 환경적 지지를 상실함으로써, 또는 이전의 상실과 이별을 환기시킴으로써 환자를 불안하게 한다(데이비드 샤르프, 2002: 120). 분리는 반드시 상실을 건드린다. 내담자가 나와 연결되어 있는 동안에도 분리는 계속 일어난다. 그때마다 무언가를 경험한다. 내가 없을 때 어떻게 있는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내담자는 내가 휴가를 가면 버림받은 것 같다고 한다. 어떤 내담자는 무관심한 것처럼 돌아온다. 어떤 내담자는 더 많은 것을 쏟아낸다. 이 모든 반응이 전이다. 분리를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초기 경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불안이 줄어들 때. 분리가 덜 두렵게 될 때. 그것이 전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50대 초반 여성이 왔다. 처음에 회기와 회기 사이의 시간을 매우 불안해했다. 다음 회기까지 정말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없으면 곧 무너질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안이 조금씩 줄었다. 주말도 견뎠다. 내가 오래 휴가를 갔다 돌아왔을 때 달랐다. 혼자서도 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이러한 작은 분리 경험들은 분리와 상실에 대한 중요한 작업의 기초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종결할 때 치료 자체를 상실하는 것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데이비드 샤르프, 2002: 121). 작은 분리들이 더 큰 분리를 준비한다. 상담이 끝나는 것은 큰 분리다. 그 큰 분리를 견딜 수 있으려면, 작은 분리들을 통해 내가 없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 전이가 해소되는 신호 —
전이가 해소될 때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몇 가지 분명한 신호가 있다.
내담자가 나를 덜 이상화한다. 또는 덜 적대시한다. 나를 전체 인간으로 보기 시작한다. 내가 실수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밖의 관계에서 달라졌다는 것을 말한다.
클라인이 말하는 우울적 자리는 단순한 우울이 아니다. 대상을 전체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면도, 나쁜 면도 함께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바카라임감과 배려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외적 대상이 내면 세계 안의 표상적 이미지와 개념으로 동화되기 위해서는 상징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통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자리에서 애도에 대해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수잔 캐벌러-애들러, 2009: 25-26). 내담자가 나를 이상화된 대상으로도 박해하는 대상으로도 보지 않고, 충분히 좋은 인간으로 볼 수 있을 때. 그 과정이 나를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소화하는 것이다.
편집-분열적 자리에서는 나를 좋은 대상 아니면 나쁜 대상으로 본다. 그 사이가 없다. 우울적 자리로 이동하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으로.
그 이동이 일어날 때 전이가 변한다.
50대 그 여성이 어느 날 말했다.
"선생님이 맞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내가 잘못하면 크게 상처받았다. 내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그런데 이 말은 달랐다. 내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불완전하지만 충분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 종결의 애도 —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의 기저에는 애도를 촉진하는 작업이 놓여 있다. 환자들은 그들의 삶에 늘 따라 다니는 상실과 박탈을 애도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데이비드 샤르프, 2002: 121). 상담을 끝내는 것도 상실이다. 나와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다. 매주 또는 격주로 만나던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애도해야 한다.
이 애도를 건너뛰면 안 된다. 갑자기 끝내거나, 아무렇지 않게 끝내거나, 이미 끝난 것처럼 끝내면 내담자가 종결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종결도 치료의 중요한 일부다.
종결을 어떻게 하는지가 마지막 경험이 된다. 이 관계가 어떻게 끝났는지가 내담자가 가져가는 것의 일부다. 관계는 이렇게 끝날 수 있다는 것. 상실이 있지만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 끝이 있지만 반드시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철회하는 것. 그런데 그것이 기억을 통해 이루어진다(맹정현, 2015: 49). 상담을 끝낼 때도 그렇다. 우리가 함께 한 것을 기억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함께 보면서. 그 기억이 나와의 관계에서 리비도를 조금씩 거두어들이게 한다. 이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50대 그 여성과 종결을 처음 이야기했을 때. 처음에 강하게 거부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더 필요하다고. 그 반응이 맞는 반응이었다. 상실 앞에서 거부하는 것.
천천히 이야기했다. 함께 한 시간들을 돌아봤다. 어디서 출발했고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그 이야기들이 천천히 애도를 가능하게 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66개의 혜택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