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침묵은 말한다

by홍종민


4장.


침묵은 말한다


상담실에서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가 끊긴다. 공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이 침묵 안에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편하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 알게 됐다. 그 침묵 안에도 말이 있다는 것을. 어떤 침묵은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을 담고 있다. 어떤 침묵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담고 있다.


그 침묵을 읽는 것. 그게 이 장의 이야기다.


상담을 오래 하면서 이것을 몸으로 배웠다. 말만 들으면 반밖에 못 듣는다. 말이 없는 것, 말이 끊기는 것, 말하는 방식. 이것들을 함께 들어야 이 사람이 하는 말의 전체를 들을 수 있다.


상담실은 말의 공간만이 아니다. 침묵의 공간이기도 하다.


상담이 잘 됐다고 느끼는 날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말이 많았던 날보다 말이 적당했던 날들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이 침묵 안에 함께 있을 수 있었던 날들. 그 침묵이 편안했던 날들. 그 날들이 진짜 상담이 된 날들이었다.


— 샌드라가 들어왔을 때 —


상담실에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무언가가 전달된다. 문을 어떻게 여는지. 들어오면서 눈을 어디에 두는지. 의자에 어떻게 앉는지. 이 모든 것이 의사소통이다. 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많은 것이 전달된다.


어떤 여성이 처음 왔을 때의 일이다.


문 앞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몸짓은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벗어서 의자 뒤로 던졌다. 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방이 마음에 들어요."


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이 사람은 한 권의 바카라을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 사람이 방을 차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여기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 압도당하는 느낌. 상담자인 내가 이 방의 주인인데, 이 사람이 들어서는 순간 그 위치가 뒤바뀐 것 같았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이 몸에 각인되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낯선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패턴이 이미 이 사람의 관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나중에 렘마의 저서를 읽고 나서야 그 순간을 이해했다. 렘마는 이 여성을 샌드라라는 이름으로 기록했다. 렘마도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샌드라가 상담실을 차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통제 받고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렘마, 2022: 336). 이것은 샌드라의 성격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 관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가 들어서는 순간에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몸짓에는 말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담겨 있다. 말은 통제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할지, 어떻게 표현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몸짓은 그렇지 않다. 스카프를 던지는 것, 방을 평가하는 것, 악수를 먼저 건네는 것. 이것들은 대부분 의식하지 못하고 나온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정직하다. 렘마의 관찰이 정확하다. 몸짓을 통한 메시지가 갖는 힘은 그것이 무언가를 숨길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전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정신 내용을 의사소통하기 위한 이상적인 수단이 된다(렘마, 2022: 335).


숨길 수 있다는 것. 말로는 강하게 보이면서, 몸짓으로는 통제를 놓지 못하는 것.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샌드라는 이혼 이야기와 재정 문제를 쏟아냈다. 빠르고 사무적이고 자신감 있게.


그런데 내용과 방식이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용은 피해와 억울함이었다. 방식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렘마는 이 이중성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샌드라가 도착한 순간부터, 언어적으로 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으로도, 취약해지는 것과 의존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이 전달되고 있었다(렘마, 2022: 336).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 이 사람의 더 깊은 곳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기가 진행되면서 패턴이 선명해졌다. 렘마가 무슨 해석을 해도 샌드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맞아요, 바카라에서 읽었어요." "동의합니다, 나는 항상 그것을 알고 있었어요." 들어오던 순간의 비언어적 신호와 정확히 같은 방향이었다. 의존하지 않으려는 것.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것. 취약해지지 않으려는 것.


방에 들어오던 그 순간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나도 이런 사람을 여러 번 만났다. 강한 척하는 것이 방어라는 것. 취약해지지 않으려는 것이 오히려 가장 취약한 곳에서 온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면 강함 뒤에 있는 것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섣불리 직면하지 않고. 그 방어가 왜 필요한지를 먼저 보는 것.


샌드라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비언어적 신호들 안에 담겨 있었다. 비언어적 신호는 말보다 오래된 곳에서 온다. 말은 슬롯화를 통해 통제된다. 어릴 때부터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않을지를 배운다. 그런데 몸의 반응은 그보다 먼저 형성된다. 더 이른 시기에, 더 기본적인 수준에서. 그래서 내용보다 방식이 더 솔직하다. 언어 이전의 경험이 몸에 새겨져 있다.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말을 기다렸다. 사람이 들어와 앉으면 이야기가 시작될 때까지 준비하는 느낌으로 있었다.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 달라졌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이미 무언가가 전달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순간부터 듣는다.


그 감각을 키우는 것. 그것이 상담자가 하는 훈련의 핵심 중 하나다. 그 훈련은 끝이 없다. 오래 할수록 더 섬세해지고 더 정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 겸손해지는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홍종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푸른바다, 조약돌 온라인카지노스토리

99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6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4화3장.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