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홍종민Aug 19. 2026brunch_membership's
3장.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
상담실 안에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다른 한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상담은 허공에 머문다.
이 장을 쓰면서 한 가지가 자꾸 생각났다. 상담이 잘 됐다고 느껴지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 이야기 내용이 좋았냐 나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이 방 안에 내가 온전히 있었냐 없었냐의 문제였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 이야기가 나와 이 사람 사이에서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지를 느끼고 있을 때, 상담이 살아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두 사람이 각자의 방에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가 그 차이를 만든다.
— 지금 이 방에서 —
50대 초반 남성이 왔다. 첫 번째 만남이었다.
상담실에 들어서더니 의자를 살짝 뒤로 당겼다. 앉기 전에 방을 한 번 둘러봤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자리에 앉고도 한동안 무릎 위에 놓인 자기 손만 봤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몸에 각인되어 나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반응해왔을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서 먼저 경계하고, 확인하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조금씩 여는 방식. 그 패턴이 지금 이 방에서 처음 만나는 나와의 관계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말이 나오기 전에 몸이 먼저 말한다. 자세, 눈빛, 목소리의 높낮이, 침묵의 질감. 이것들이 전부 의사소통이다. 나는 이것을 임상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클라인은 그것을 전이라 불렀다. 말, 이야기, 침묵, 감정, 행동, 우리가 반응하게 하거나 반응을 제약하는 방식. 환자가 관계 속으로 가져오는 모든 것(데이비드 샤르프, 2002: 6).
그런데 상담실에서 만나는 이 전이는 클라인의 정의보다 더 촘촘하다. 의자를 뒤로 당기는 것, 시선을 피하는 것, 손만 보는 것.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이 사람이 세상과 관계 맺어온 방식의 압축판이다. 나는 그 압축판을 지금 이 방에서 읽고 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살면서 누군가한테 제 속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짧았다. 그런데 그 안에 엄청난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방금 전 그의 몸짓을 떠올렸다. 의자를 뒤로 당긴 것. 시선을 피한 것. 손만 본 것. 그리고 지금 이 말. 속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지금 처음 만난 나에게 그 말을 하고 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용기다.
이 사람이 이 방에서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어떤 부분이 그것을 막고 있는지. 그 두 힘이 지금 이 만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야기의 내용보다 이 구조가 이 사람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나는 물었다.
"지금 이 방에서 저한테 말하는 게 어떤 것 같으세요."
잠깐 멈췄다.
"무섭기도 하고요."
"또요?"
"조금은 말하고 싶기도 한 것 같아요."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66개의 혜택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