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四季)와 멈춤
일 년을 한 시(時)같이
철철이 쟁여놓고
갈 길 미리 이르니
다들 예단하더라
그러게
세상이치는
알고 보면 쉬운 것
아직,
문 열기 전인데
밖은 벌써 소란하다
밤새
무단 침입한 흔적
어딘가 남아 있다는 듯
새 한 마리
빈 가지를 흔든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에는
아직 어제인데
밖에는
손 닿지 않은 하루가
벌써 분주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나가보아야 안다
어제 없던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새 길을 냈을 수도 있다
문고리를 잡는다
내가 하루를 여는 것인지
하루가 나를 불러내는 것인지
아직 모른다
문을 연다
산천리로 들어와 농장에 접어들면 시골답지 않게 곧게 뻗은 길이 연구소까지 이어진다.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 모두 내가 관리해야 할 일터다.
처음 이 땅을 보았을 때는 들어오는 길이 있다고 했다. 측량을 하고서야 제대로 된 진입로가 없는 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보다 농사가 먼저 시작되었다.
나무를 심고 풀을 베고 물길을 냈다. 잘 자란 것도 있었고 죽은 것도 있었다. 심지 않았는데 올라온 것이 있었고, 애써 심어놓고도 사라진 것이 있었다.
그렇게 산천리에서 열한 해를 살았다.
아침에 문을 열면 멀리 산이 보인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담아두고 농장으로 나선다.
어제 보이지 않던 풀이 올라와 있고, 가지 하나가 말라 있기도 하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물이 지나간 자리부터 본다. 어떤 날은 그것들을 들여다보다 오전이 다 가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선다.
무엇을 할지는 나가본 뒤 정한다.
왜 아직 여기서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대답은 길지 않다.
좋으니까.
그거 외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아침이면 출근한다.
오늘도 농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