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엄마가 된 여름》 4
영국에 도착해 첫째 손주를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움보다 먼저 든 마음은 안쓰러움이었다. 영상통화와 사진으로 자주 보던 아이였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몸이 여리고 가냘파 보였다. 그래서인지 갓 태어난 둘째 손녀에게 마음이 가면서도 내 눈은 자꾸 첫째에게로 향했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기에게 쏠리지만, 그 시간 동안 한 아이는 처음으로 오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딸의 집 백야드에는 라즈베리가 자라고 있었다. 첫째가 워낙 좋아해서 익은 열매가 보이면 몇 알씩 따서 아이에게 주곤 했는데, 딸에게 들으니 다른 것은 곧잘 나누어 먹으면서도 라즈베리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이가 들고 있는 라즈베리를 보며 일부러 물었다.
“할아버지도 하나 주면 안 돼?”
안 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가 아끼던 라즈베리 하나를 집어 할아버지 입에 쏙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신통하고 귀엽던지. 라즈베리 한 알을 얻어먹고도 남편과 나는 한참을 웃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첫째는 부모의 사랑을 혼자 받아온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작은 아기가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품에 오래 안겨 있고, 울기만 하면 엄마와 아빠가 움직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아기에게 달려갔다.
우리에게는 둘째 손녀가 태어난 기쁜 일이었지만, 첫째에게는 가족 안에서 자기 자리가 조금 달라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영국으로 오기 전부터 첫째가 동생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더 신경 써주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렇다고 늘 잘했던 것은 아니다.
아기가 누구를 닮았다거나 작은 손을 움직였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어른들끼리 한참 나누고 있으면 첫째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아차’ 싶었다. 우리도 모르게 또 아기에게만 시선이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얼른 첫째에게 말을 걸고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 어린이집도 여름방학이라 첫째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자연스럽게 첫째의 가장 좋은 놀이 친구가 되었다. 아침이면 제일 먼저 3층에 있는 우리 방으로 올라와 할아버지를 찾았고, 백야드에서 축구를 하고 물놀이를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또 다른 놀이가 이어졌다. 밤이 되어 딸이 이제 자러 가야 한다고 해도 아이는 조금만 더 놀겠다며 우리 방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는 고된 시간이었겠지만, 첫째에게는 누군가가 온전히 자기만 바라봐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밥을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불고기를 잘게 잘라 밥과 함께 주면 제법 잘 먹었고, 카레를 해주어도 맛있게 먹었다. 하루 종일 부엌을 오가다가도 아이가 한 그릇을 비우면 이상하게 피곤함이 먼저 풀렸다.
내가 염려했던 것과 달리 첫째는 동생을 참 좋아했다.
아기가 누워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한참 얼굴을 들여다보았고, 작은 몸이 신기한지 자꾸 손을 뻗어 만져보려고 했다. 신생아의 얼굴이나 손은 만지지 말고 발만 살짝 만져보라고 알려주었더니 그다음부터는 동생에게 다가갈 때마다 작은 발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자기가 아끼던 장난감을 가져와 아직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동생에게 내어주기도 했다. 동생이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지는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어른인 우리도 가족 한 사람이 늘어나면 생활이 달라지는데, 네 살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변화였을까. 엄마를 혼자 차지할 수도 없고, 아기가 울면 기다려야 할 때도 생겼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기 방식으로 동생 곁에 다가가고 있었다. 작은 발을 만져보고, 말을 걸어보고, 장난감을 건네면서 조금씩 오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사위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피곤할 텐데도 첫째와 놀아주는 시간을 빼놓지 않았고, 잠들기 전에는 아이 곁에 앉아 동화바카라을 읽어주었다. 딸 역시 신생아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가운데 첫째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둘째가 태어난 뒤 첫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계속 살피는 부모라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이 바로 우리 집의 첫째였다.
그 아이에게도 어느 날 동생이 생겼다. 그런데 그 무렵의 일을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재우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버티느라 힘들었다는 기억만 군데군데 남아 있을 뿐, 동생을 처음 맞았던 큰딸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헤아려주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딸보다 더 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둘째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잘 지내겠거니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되어 첫째 손주를 바라보고서야 그 시절의 큰딸도 지금 내 눈앞의 이 아이처럼 어린아이였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동생이 태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큰아이가 되는 것은 아닌데, 부모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먼저 태어난 아이가 조금은 커졌다고 생각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손주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오래전 내 딸의 마음을 뒤늦게 돌아보게 되었다.
그 생각이 들자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딸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서른 해도 훨씬 지난 일을 이제 와 미안해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이제 손주를 통해 다시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알아가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은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다고 첫째를 안쓰럽게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어른들의 관심을 동생과 나누어야 했지만 대신 자기를 좋아하는 동생이 생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할아버지와 첫째 사이에는 우리도 끼어들기 어려운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지금도 첫째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백야드로 걸어 나가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은 손으로 할아버지 손가락을 붙잡고 나가다가 무슨 말인가를 하며 올려다보면 남편은 허리를 조금 숙여 아이의 말을 들었다. 잠시 뒤에는 마당에서 두 사람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생아를 바라보느라 정신없이 보낸 날들 속에서도 나는 자꾸 첫째에게 눈이 갔다.
모두가 새로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아이 역시 전에 없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네 살의 첫째도 그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오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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