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엄마가 된 여름》 3
딸의 집에 도착한 첫날 밤, 열 시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딸에게 단단히 말했다. 신생아는 밤에도 수시로 일어나 모유를 먹어야 하니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아기가 깨면 너는 모유만 먹이고, 그다음에는 내가 데려가 트림을 시키고 재울 테니 꼭 나를 깨우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딸의 집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우리 부부가 머무는 방은 3층, 딸과 신생아가 자는 방은 2층에 있었다. 긴 비행 끝에 침대에 누운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깊이 잠들었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그때까지 아기 우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른 2층으로 내려갔더니 딸이 아기를 품에 안고 흔들며 재우고 있었다.
“왜 엄마를 안 깨웠어?”
따지듯 물었더니 딸은 내가 푹 자기를 바랐다며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문까지 닫아두었다고 했다. 그러니 아기가 몇 번을 울었어도 내가 들을 리가 없었다. 멀리서 온 엄마를 생각해서 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오히려 미안했다. 산모인 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첫날밤부터 딸은 나를 재우고 혼자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 김에 그대로 하루를 시작했다. 보통 여행이라면 늦잠을 자도 되고, 아침을 먹으러 나가도 되고,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생각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국행에서 우리가 아침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관광지가 아니라 식구들의 아침밥이었다.
한집에 사는 여섯 사람의 아침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사위는 한국 음식을 잘 먹는 편이 아니어서 따로 챙겨야 했고, 네 살 된 첫째 손주의 아침도 따로 준비했다. 딸과 우리 부부는 한국식으로 함께 먹을 수 있었으니 결국 아침상을 세 번 차리는 셈이었다. 한 끼를 먹이고 나면 설거지가 기다렸고, 설거지를 마치면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곳을 한꺼번에 치울 수는 없어 일단 부엌부터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남편은 우리가 캐나다에서부터 약속한 대로 첫째를 맡았다. 평소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였지만 마침 여름방학이라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네 살 아이와 하루를 함께 보낸다는 것은 옆에 앉아 장난감 몇 번 만져주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백야드에 나가 함께 뛰고 축구를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또 다른 놀이가 기다렸고, 날씨가 좋으면 물놀이도 했다. 첫째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남편도 좀처럼 쉴 틈이 없었다.
하루는 첫째와 한참 놀아주고 있는 남편에게 장난삼아 물었다.
“당신, 온라인 게임 다니는 게 좋아? 아니면 큰애랑 하루 종일 놀아주는 게 좋아?”
나는 그래도 손주와 노는 게 좋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생각할 시간도 필요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온라인 게임 다니는 게 좋아.”
너무 빨리 대답해서 웃음이 터졌다. ㅎㅎ 손주가 아무리 예뻐도 네 살 아이의 체력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일은 60대 할아버지에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첫째가 다시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남편은 또 일어나 아이를 따라나섰다.
나에게도 쉴 틈은 많지 않았다. 아기가 모유를 먹을 시간이 되면 딸에게 데려다주고, 수유가 끝나면 다시 받아 트림을 시켰다. 아기가 잠든 사이에는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면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첫째의 끼니를 챙기고 나면 또 그릇이 쌓였고, 하던 일을 끝내기도 전에 아기가 울었다. 그 사이 첫째는 할아버지를 찾았다.
치워도 다시 어질러지고, 설거지를 끝내도 다시 그릇이 나오고, 빨래를 개어놓으면 또 빨랫감이 생기는 집이었다.
우리도 아이들을 키울 때는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자라 각자의 삶을 살게 된 뒤 우리 부부의 집은 한결 조용해졌고, 내가 치운 자리는 대체로 그대로 있었다. 오랜만에 두 아이가 있는 집의 한가운데 들어와 보니 잊고 있던 시간이 다시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네 살 아이가 집 안을 뛰어다니고 신생아가 울면 딸은 아기를 품에 안았으며, 잠깐 조용하다 싶으면 또 어디선가 새로운 일이 생겼다.
남편도 내가 바빠 보이면 신생아를 안아주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기는 할아버지 품에만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울었다. 남편이 어떻게든 달래보겠다고 조심조심 안고 있어도 결국 내가 다시 받아들 때가 많았다. 대신 첫째가 잠든 틈이면 남편은 부엌으로 와서 내가 하던 일을 거들었다. 시간이 나면 백야드의 잡초를 뽑기도 하고 유리창을 닦기도 했다. 누구 일이 따로 정해져 있다기보다 그 순간 손이 비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하나씩 해나갔다.
저녁이면 신생아 목욕도 내 몫이 되었다. 작은 아기를 욕조에 넣는 일은 처음에는 조심스러워 한 손으로 몸을 단단히 받치고 다른 손으로 물을 끼얹었다.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괜찮아, 할머니가 잡고 있어” 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따뜻한 물에 작은 몸을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혀 품에 안으면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던 피곤함도 잠시 잊혔다. 여러 일 가운데서도 손녀를 목욕시키는 시간만큼은 내가 참 좋아했다.
딸에게는 모유를 먹이는 시간 말고는 가능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말로는 “가서 좀 쉬어” 하면 간단했지만, 실제로 딸에게 한두 시간의 잠을 만들어주려면 나는 신생아를 받아 안아야 했고, 남편은 그동안 첫째와 놀아주어야 했다. 그 사이 밥과 빨래, 설거지까지 우리가 맡아야 딸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남편과 내가 그 집의 하루 속으로 들어가 하나씩 일을 맡고 나서야 딸에게 비로소 쉴 시간이 생겼다.
첫날 밤 나를 깨우지 않았던 일이 마음에 남아 둘째 날에는 딸에게 다시 단단히 말했다.
“엄마가 너 좀 편하게 해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엄마를 재우면 어떡해. 오늘부터는 위층 문 닫지 마. 아기 깨면 너는 모유만 먹여. 그다음은 엄마가 할게.”
그날부터 밤잠은 편하게 잘 수 없었다. 신생아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깨어났고, 딸이 모유를 먹이고 나면 내가 아기를 받아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웠다. 바로 잠들 때도 있었지만 아무리 달래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을 때면 작은 몸을 품에 안은 채 집 안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얼마간 그렇게 걷다 보면 아기가 스르르 잠들었고, 조심스럽게 눕힌 뒤 다시 3층으로 올라가 잠깐 눈을 붙였다. 그러다 어느새 또 아기 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밤에는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다 보니 며칠 지나지 않아 몸이 먼저 반응했다. 평소 아프지 않던 허리가 뻐근했고 밤이면 다리가 무거웠다. 남편도 첫째를 따라다니느라 지쳤는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당신 괜찮아?” 하고 물었다.
그럴 때면 예전에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나 싶었다. 그때도 아이가 밤에 울면 일어나 먹이고 재웠고, 아침이 되면 다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에는 그것이 내 일상이었고 무엇보다 젊었다. 60대가 되어 다시 신생아와 함께 살아보니 젊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를 뒤늦게 알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한 달만 이렇게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우리는 온라인 게임에 2주 휴가를 내고 영국으로 왔다. 관광 계획은 애초에 세우지도 않았지만 정말 동네를 벗어나 어디 한 곳 제대로 구경하러 갈 틈이 없었다. 밤이 되어 3층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고,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 이거 휴가 맞아?”
둘이 마주 보고 웃었다. 휴가는 휴가인데 회사에 출근할 때보다 몸은 더 바쁜 것 같았다.
그래도 딸이 모유를 먹이고 방으로 들어가 한두 시간이라도 푹 자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사위의 얼굴에 잠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우리도 덩달아 편해졌다. 첫째는 하루가 다르게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고, 저녁이면 나는 작은 손녀를 목욕시켰다. 몸은 고단했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동안 그 집의 누군가가 잠시라도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조부모의 휴가는 휴가가 아니었다.
밤이면 “아이고,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는 또 침대에서 일어났다. 2층으로 내려가 딸이 모유를 다 먹이기를 기다렸다가 아기를 받아 작은 등을 토닥였다. 한동안 품에 안고 있으면 아기의 몸에서 힘이 빠지고 어느 순간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잠든 아기를 조심스럽게 눕히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다리는 무거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와서 참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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