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 엄마가 처음이다

《딸이 엄마가 된 여름》 5

by이민자의 부엌

한밤중에 딸이 신생아에게 모유를 먹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쓰였다.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다 보니 딸은 늘 잠이 부족했고,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아기가 울면 아무리 졸려도 몸을 일으켰다. 낮에는 첫째가 엄마를 찾으면 대답하고 챙겨야 했으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에게는 밤과 낮의 경계가 따로 없는 듯했다.


둘째는 수유 후 자주 토했다. 조금 게워내는 정도일 때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먹은 것을 분수처럼 토해내 딸이 깜짝 놀랐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아기가 왜 이렇게 토하느냐고 묻는데 나도 순간 놀랐지만, 딸이 더 불안해할까 봐 수유가 끝나면 바로 눕히지 말고 내가 충분히 트림을 시킨 뒤 조금 더 안고 있다가 재울 테니 너는 모유만 먹이고 얼른 자라고 했다.


그날부터 수유가 끝나면 딸에게서 아기를 받아 등을 토닥이며 한동안 품에 안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방을 나설 때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산후조리를 해주러 왔으니 밥을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것도, 아기를 안고 재우는 것도 내가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모유를 먹이는 일과 첫째가 엄마를 찾는 것까지 대신해줄 수는 없었다. 딸을 쉬게 해주려고 캐나다에서 영국까지 왔는데도 엄마가 된 딸에게는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내 눈에는 아직도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챙겨주고 싶은 딸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몸은 지쳐 있는데 첫째가 부르면 대답하고 신생아가 울면 다시 품에 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아는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를 키워본 딸에게도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하루는 다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둘째가 태어난 뒤 딸이 가장 마음에 두는 사람은 오히려 첫째인 것 같았다.


“엄마, 큰애가 불쌍해.”


딸은 종종 그렇게 말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혼자 받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몸이 힘들어도 첫째와 보내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딸을 보면서, 우리 딸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두 아이 사이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둘째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첫째 때와 달리 둘째는 조금 예민하고 잠도 잘 자지 않는 것 같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마다 다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출산 직후라 몸도 힘들고 잠까지 부족한 딸이 혹시 마음까지 많이 지치지는 않을까 나 역시 속으로는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딸은 생각보다 잘 버텨주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캐나다로 돌아간 뒤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는 남편이 첫째와 시간을 보내고 내가 신생아와 집안일을 맡아줄 수 있었지만, 2주가 지나 우리가 떠나고 나면 다시 딸과 사위 둘이 두 아이의 하루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쓰였다. 딸은 이제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내게는 여전히 걱정되는 딸이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다 보면 오래전의 내 모습도 겹쳐 보였다. 딸에게도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이 있었듯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이제 딸은 한 아이를 품에 안아 모유를 먹이고, 다른 아이를 챙기다가 울음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아기에게로 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젊었을 때 저렇게 하루를 살았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에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들여다볼 여유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먹이고 입히고 아프지 않은지 살피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고, 다음 날이면 또 같은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나 역시 조금씩 나이를 먹었지만 그때는 그것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그날그날을 살아냈다.


그런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고 있으니 그 시절의 나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 역시 처음부터 엄마 노릇을 잘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둘째가 태어나자 한 아이를 키울 때와는 또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한 일도 있었겠지만 몰라서 서툴렀던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나도 함께 배우며 엄마가 되어갔다.


어느 날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우리를 어떻게 키웠어?”


한밤중에 일어나 모유를 먹이는 일이 유난히 힘든 날이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웃음도 나면서 마음 한쪽이 뭉클했다. 나는 오래전의 일을 별것 아니라는 듯 넘겼지만, 딸은 이제 자기 몸으로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내가 살았던 시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딸이 내가 아이들을 키웠던 방식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세월도 달라졌고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딸은 딸의 방식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자기 삶을 살아가야 했다.


나는 딸이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면 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바카라임지면서도 딸에게는 딸의 삶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고, 눈 밑이 어두워지면 얼른 들어가 자라고 재촉했으니 나 역시 여전히 그 아이의 엄마였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딸을 바라보면서도 내 눈에는 여전히 내가 챙겨주고 싶은 딸이 보였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도 돌아가신 부모님 눈에는 여전히 걱정되고 챙겨주고 싶은 딸이었을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서야 조금씩 보이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가 되었고, 이제 내 딸도 두 아이를 키우며 자기 몫의 엄마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딸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오래전의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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