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엄마가 된 여름》 2
영국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우버를 불러 딸의 집으로 향했다. 사위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말렸다. 집에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있었고, 네 살 된 첫째도 챙겨야 했으며,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까지 있었다. 우리야 공항에서 우버를 타면 그만인데 사위까지 공항을 오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긴 비행을 마친 뒤라 몸은 분명 피곤했을 텐데 이상하게 피곤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사진으로만 보았던 둘째 손녀를 처음 만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얼굴을 여러 번 보았지만, 화면 속 아기를 보는 것과 실제로 품에 안는 것은 분명 다를 것 같았다. 우버가 딸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자꾸 먼저 그 집으로 가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해 캐리어를 내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딸과 사위, 네 살 된 첫째 손주가 우리를 맞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본 첫째는 반가우면서도 쑥스러운지 온몸을 비틀며 웃더니 이내 우리 품으로 들어왔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볼 때는 제법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안아보니 몸이 생각보다 가늘었다. 괜히 마음이 쓰여 맛있는 것을 많이 만들어 먹여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첫째를 안아주고 나서 딸을 바라보았다. 얼굴도 몸도 퉁퉁 부어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두 아이를 돌보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피곤한 기색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다른 생각보다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우리가 영국으로 오기 전부터 딸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우리가 온다고 집 치울 생각은 하지 말라고, 너는 지금 산모니까 청소하지 말고 무조건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집 안은 한눈에 보아도 어수선했다. 거실에는 첫째의 장난감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그 사이로 우리가 예전에 선물했던 장난감들도 보였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모습이 마음에 놓였다. 집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면 딸이 우리 온다고 몸을 움직였을 것 같았다. 어수선한 거실을 둘러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청소 안 했구나. 잘했다.
딸의 부은 얼굴을 보고 있으니 캐나다에서부터 싸 들고 온 음식들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미역국부터 따뜻하게 끓여 먹이고 싶었다. 캐리어 네 개의 대부분을 먹을 것으로 채워오면서 너무 많이 가져가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딸을 보고 나니 잘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손녀는 침대에서 새록새록 잠들어 있었다. 혹시라도 잠을 깨울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는 발걸음까지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사진으로 이미 얼굴을 여러 번 보았는데 실제로 마주한 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조그마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제법 많았고, 작은 손과 발은 만져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손녀의 얼굴 어딘가에서 어린 시절 딸의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잠든 아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조금 전 보았던 딸의 부은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작은 생명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딸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뎠을까. 아기를 바라보다가 딸을 보고, 다시 아기를 바라보게 되었다. 손녀를 처음 만난 기쁨 속에 딸을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자꾸 따라왔다.
얼마 후 아기가 눈을 떴고 딸은 아기를 품에 안아 모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아기가 젖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작은 손을 살며시 잡아보았다. 그런데 손녀가 내 손가락을 제 손 안에 넣고 꼭 쥐었다. 그렇게 작은 손이라 힘도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법 힘이 있었다. 내 손가락 하나를 겨우 감쌀 만한 손으로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남편과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내 손가락을 꼭 잡고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손녀가 우리 가족에게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딸이 모유를 다 먹인 뒤 아기를 내게 건네주었다. 트림도 시킬 겸 처음으로 손녀를 품에 안았는데 몸이 너무 작아 어디에 손을 받쳐야 편할지부터 조심스러웠다. 목을 받치고 작은 몸을 내 품으로 끌어당기면서도 혹시 불편할까 싶어 자세를 몇 번이나 살폈다. 아이들을 키운 나도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처음 아기를 안아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긴장될까 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막상 손녀가 품에 들어오자 나는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작아.”
알아들을 리 없는 아기에게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우리가 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라고, 캐나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를 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말도 몇 번이나 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 가만히 있었지만 나는 혼자 묻고 대답하며 한참을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그 말들을 들어야 했던 사람은 손녀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며 나 역시 이 작은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도 손녀를 처음 품에 안았다. 평소에는 웬만한 일에 크게 긴장하지 않는 사람인데 갓난아기를 받아들 때만큼은 손부터 조심스러워졌다. 아기가 불편할까 봐 목과 등을 살피며 조심조심 안고는 한참 동안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자꾸 “참 신기하다”고 했다. 나도 그랬지만 남편 역시 자기 품에 안긴 작은 아이가 우리 손녀라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고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다 다시 딸에게 눈길이 갔다. 조금 전까지 자기 아이를 품에 안고 모유를 먹이고 있던 딸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나도 저 딸을 저렇게 안았던 때가 있었다.
36년 전이었다. 그때는 내가 아기를 안고 있었고, 지금 내 앞에서 자기 아기를 안고 있는 딸이 바로 그 아기였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몰라 당황하고, 잘 자고 있는지 몇 번씩 들여다보던 젊은 엄마였던 나도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하루가 참 길었는데,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온 세월은 지나고 보니 믿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딸의 얼굴을 보다가 아기의 얼굴을 보고, 다시 딸을 바라보았다.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던 시간과 딸이 엄마가 되어 있는 시간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것 같았다. 슬픈 것도 아닌데 눈물이 조금 났다. 기쁘다는 말 하나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저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싶었고, 그 세월을 지나 내 딸이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다고 그날 우리 눈에 둘째 손녀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새 아기가 태어나면서 첫째가 갑자기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영국으로 오기 전부터 남편과 나는 남편이 첫째를 조금 더 챙기고, 나는 산모인 딸과 신생아를 주로 돌보기로 이야기해두었다. 네 살 아이에게도 동생의 탄생은 처음 겪는 큰 변화였을 것이다.
딸의 집에 들어서고 보니 우리가 살펴야 할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출산으로 몸이 지친 딸도 있었고, 두 아이를 돌보느라 분주한 사위도 있었으며, 갑자기 오빠가 된 첫째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아기가 있었다. 우리는 손녀를 만나러 왔지만 앞으로의 두 주는 그 집의 식구들 곁에서 함께 살아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몇 번이나 손녀 곁으로 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자는 모습도 보고 작은 손과 발도 다시 만져보았다. 조금 전 내 손가락을 잡았던 손은 여전히 믿기 어려울 만큼 작았다. 그 작은 손으로 앞으로 무엇을 만지고, 누구의 손을 잡으며,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의 나는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몇 시간을 날아와 이제야 처음 만난 손녀가 내 앞에 있었고, 그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손가락 하나를 생각보다 힘주어 붙잡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손가락을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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