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by페이지 성희



세월이 흐르니, 친구 없이 살지 못하던 내가 친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져도 별일없이 사는 나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매일 만나도 집에 돌아와 다시 긴 통화를 하고, 아무리 바빠도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던 친구들이 있었다. 가족처럼 서로의 일상을 살뜰히 챙겨주던 사이였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삶의 여정이 달라지면서 그 관계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안부조차 나누지 않게 되었고, 서로의 삶이 궁금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시간과 거리라는게 그런 것이었다.

학교에서든, 온라인 게임에서든, 혹은 한 동네에서 살면서 맺은 어떤 인연이든 한두 명은 남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것마저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끊어지고 만다. 이상한 것은 그 관계가 끊어지는 간격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소라게가 자신의 껍데기 안에 몸을 숨기고 안전함을 느끼듯, 나도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릴 때보다 내 안에 머물 때 더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람을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도 나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법을 배워가는 일인가 싶다.



그렇듯 몇 년째 다니고 있는 합창교실에서도 함께 모여 노래할 때 외에는 특별히 사람들과 따로 교류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학기의 합창교실에서 만난 두 분과는 남다른 정을 느끼고 있었다.

문득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두 분은 나를 참 부담 없이 대해주셨던 것 같다.

"공기처럼 가볍게 스치듯 만났다가, 바람처럼 헤어지다."

란 문장이 어울리는 만남이었다.


무언가를 바라거나 부담을 주지 않고, 딱히 궁금한 것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눈 마주치면 웃고, 노래하고 달콤한 사탕 한 알 나눠서 입에 넣고, 뽀송하게 마른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식사 한 번 한적도 없고, 전화번호도 몰라서 안부 전화 한 통 없이 사계절을 보냈지만,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자연스레 마음 안에 들이는 사이가 되어갔다.


"만남"이란 오랜 시간 누적된 "인연의 법칙"이 만들어낸 결과’다.

신기하게 처음 만났을때부터 서로 낯설지 않았고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다.


처음 한 해 동안은 그저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아마 서로의 자리를 챙겨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옆자리에 함께 앉는 물리적인 가까움, 마주할 때마다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친근한 표정, 한 사람이 결석하면 ‘오늘은 왜 안 왔지?’ 하고 궁금해지는 마음.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살피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 마음이 가까워졌다는 것과 결이 같은 사람임을 알아 보게 되었다.


7월, 방학을 맞은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미용실을 가는 길에, 마침 그 동네에 사신다는 게 생각이 나 연락을 드렸다. 가는 김에 차 한잔 나누고 싶어서였다. 흔쾌히 집으로 초대해 주신 덕분에 우리 셋은 함께 밥을 먹고 노래도 부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시 머물다 가려던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반가움이 컸던 만큼 헤어질 때의 아쉬움도 컸다.

요즘은 다른 강좌와 요일이 겹쳐 우리는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문득 스산한 가을바람이 마음을 스치니, 두 분이 생각났다.

그리운 마음이란 게 이런 건가 싶다.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오는 것을 보며 갑자기 만남과 이별, 사람의 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만남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만나기 위해 애쓰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가까워졌고, 특별한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빈자리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니 그 자리에 그리움만이 남았다.


어쩌면 좋은 만남이란 오래 붙잡아두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있는 동안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고 헤어진 뒤에도 그 온기가 남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만남이 언젠가는 이별이 되고,

이별한 자리를 다시 그리움이 대신하는 것.

그렇다면 만남의 의미는 함께 있는 시간의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무엇을 남기고 갔는가에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만남이란
언젠가 이별하지만,
떠난 자리에
그리움이라는
따뜻한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P.S. 내 생일이 있는 11월,

해마다 동네에서 공구하는 부사의 계절이 오면 달콤함을 보내드리고 싶은 지인들이 있어 행복해지는 가을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