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왈츠

by페이지 성희



가을이 오니 여름 햇살을 머금은 새콤한 홍옥에 마음이 설렌다. 신이 주신 한 해의 선물이 홍옥 한 알에 가득 담겨 있다.

백설공주의 새빨간 사과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닮은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그 맛을 나누는 기쁨. 그것은 계절이 내게 건네는 새콤달콤한 행복의 맛이다.



한 남자와 사계절을 네 번이나 함께 보내고 결혼했지만, 막상 그와 살아보니 그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 전 내가 알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미처 몰랐던 좋은 면모도 있었지만,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낯선 구석도 있었다.


그는 느긋하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흐르는 냇물이 보이면 잠시 멈춰 앉아 지친 발을 담그고 쉬어 가는 사람이다.

그는 마음 안에 여백이 넉넉한 사람이다.


여유란 것이 물질에 있다 해도 이미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더 가지려 애쓰기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을 누릴 줄 안다.

목표를 정해 결과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목표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해 조급하고 자주 불안했지만, 그는 매 순간 서두르지 않고 함께 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저 성격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며 보니, 그는 바다처럼 큰 물이다.

큰 물은 모든 것을 품고 함께 굽이쳐 나아가는 물상이다. 통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쳐내고 바로 잡으려 하거나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성질이 아니었다.


나는 여린 나무다. 내가 조급하고 불안했던 것은 추운 겨울, 나무인 내게 물보다 따뜻한 태양빛이 더 필요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부모의 삶을 바라보며, 어려서부터 익힌 삶의 방식이 달랐고 각자의 기질도 달랐으니, 처음에 힘든 게 당연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정답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확대하지 않으려 했다. 때로 단점의 성긴 구멍을 장점으로 메우며, 그렇게 마의 구간인 4년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남녀가 만나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까.

처음에는 나와 다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내 방식에 맞추려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의 시간을 겪는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깨닫는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자기 삶의 모양을 조금씩 바꾸어가며, 함께 살아갈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을.


내 삶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감각은 정말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마치 내가 그 안에 속해 그저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을 짓듯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물론 집을 지을 땅이나 이미 세워진 골격을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듯, 삶에도 타협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 지붕을 고치고 구멍 난 곳을 메우며,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의 인테리어를 바꿀 수 있듯 삶에도 내가 짓고, 고치고, 다시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을 구별하는 일이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내가 지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하나씩 손을 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고,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날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애써야 한다.

같이할 것을 찾아보고, 작은 기쁨을 만들어내고, 지나간 일은 흘려보내며, 오늘의 나를 다독여야 한다.


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솔직함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 상대를 생각해 말을 고르고,

묻고 싶어도 묻지 않고,

알아도 내색하지 않는 마음도 필요하다.


혼자 살아갈 때는 내 생각과 마음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 하지만 함께 살아보니 나의 진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도 그 사람만의 생각과 마음, 살아온 삶이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만큼 상대에게도 그 사람의 방식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내 진실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진실 곁에 상대의 진실도 함께 놓아보는 일이었다.

결혼은 내 생각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하나 더 얹어보는 일이다.


나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고, 내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서 혼자 추던 첫 번째 춤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추기 시작한 두 번째 왈츠인지도 모른다.


‘왈츠’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의 움직임을 느끼며 함께 추는 춤이다.


혼자 내 박자에 맞춰 추던 춤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박자를 가진 사람과 발을 맞추는 춤.


결혼은 때로 발을 밟고, 때로는 발이 엉키기도 하지만 서로의 박자를 조금씩 알아가며 함께 인생의 춤을 완성해 가는 일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