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밀양, 주세페 선생님의 이야기
밀양에 도착해 처음 며칠은 짐을 푸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작고 따뜻한 아파트였지만, 텅 빈 방에 들어서면 자꾸 영국 44번지의 거실이 겹쳐 보였다. 창가 자리도, 시계 아래 자리도. 여기에는 아직 아무 자리도 정해지지 않았다.
부엌부터 손을 댔다. 방 하나를 손님방으로 비우고, 개수대 옆 벽에 못을 박아 여분의 고무장갑 두 켤레를 걸었다. 누가 오든 바로 자리를 내어줄 수 있게. 영국에서 하던 대로였다. 서바스* 자기소개는 첫 문장부터 막혔다. ‘은퇴한 임대업자. 영국 44번지에서 낯선 이들을 위한 문을 열었던 사람.’ 너무 거창했다. 지웠다. ‘차 좋아하고 밥 잘 차려주는 사람.’ 이건 또 너무 식당 같았다. ‘여러분을 위해 방 하나와 밥 한 끼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스팸 문자가 그렇게 반가운 줄은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이탈리아에서 오는 배낭여행자가 밀양에 며칠 머물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부엌으로 가 고무장갑을 한번 매만졌다. 답장은 그다음에 보냈다.
“환영합니다. 오시는 날짜만 알려주세요.”
그렇게 밀양 집의 문턱을 처음 넘어온 사람이 주세페였다. 문을 열어주던 날, 그는 커다란 배낭을 현관에 내려놓으며 서툰 한국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발음이 어찌나 정확한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는 조금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유튜브로 연습했어요. 열 번쯤.”
열 번이라니. 나는 그날 이후 유튜브에게도 조금 존경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가 그저 지도나 들여다보며 여행하는 평범한 배낭여행자인 줄 알았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오진이었다. 셋째 날 저녁, 함께 밥을 먹다가 그가 물었다.
“이 동네에 태권도장이 있나요?”
“있긴 한데, 왜요?”
“가보고 싶어서요. 배운 지 이십 년도 넘었는데, 몸이 아직 기억하나 궁금해요.”
다음 날 우리는 태권도장을 찾아갔다. 도장에 들어선 그는 말없이 도복을 빌려 입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제된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 하나에 도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관장님도 놀란 얼굴로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주세페는 오래전 고향에서 만났던 스승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낯선 이탈리아 사람과 한국인 관장님 사이에 있던 벽은 그 순간 스르르 무너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가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제 스승님은 돌아가셨어요. 오늘 그분과 다시 이야기한 기분이었어요.”
잠시 후 그가 덧붙였다.
“전 감동을 받으면 요리를 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파스타 재료와 와인을 한가득 사 들고 돌아와서는 부엌을 온통 차지했다. 2시간 가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식탁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늘 볶는 냄새가 퍼지고,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낮게 흥얼거렸다. 그날 저녁 설거지는 주세페가 했다. 벽에 걸어둔 고무장갑을 끼고. 첫 번째 고무장갑의 주인이었다.
그의 요리실력은 유명한 레스토랑 셰프 못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그가 저녁 식사가 끝나자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정갈하게 맸다. 순식간에 여행자는 사라지고 의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시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환자를 만나는 정신과 의사였다. 내 식탁이 국제 병원 진료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노트북 화면 속에서는 이탈리아어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도 낮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차분하고 진지한 의사의 목소리였다. 그날 밤 그는 7시간 동안 환자 7명을 진료했다. 여행하다 돈이 떨어지면 이렇게 몰아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커피를 두 번 탔다. 한 잔은 말없이 그의 노트북 옆에 놓았다.
화면 속 환자들은 몰랐겠지만, 그날 밤 그의 진료실에는 한국인 간호사가 한 명 있었다. 나였다. 루턴에서 서류를 펼쳐놓고 밤을 새우던 시절, 고개를 들면 탁자 위에 누군가 놓고 간 차 한 잔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잔을 놓는 쪽이었다. 밤을 새우는 사람 곁에 누군가 깨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자 그는 넥타이를 풀었다. 다시 여행자의 얼굴이었다. 주세페는 그렇게 나에게 카우치서핑*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주고 떠났다. 떠나던 날 아침, 그는 현관에서 나를 꼭 안으며 말했다.
“이 집, 제가 아는 가장 따뜻한 병원이었어요.”
*Servas International(서바스 인터내셔널) : 여행자가 현지 회원의 집에 머물며 서로의 문화와 삶을 나누는 국제 비영리 교류 단체. 1949년 평화와 국제적 이해를 넓히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며, 회원 간 홈스테이와 만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Couchsurfing(카우치서핑) : 현지인이 여행자에게 무료로 숙박 공간을 내어주며 교류하는 여행 방식이자 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