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Broadbottom, 조용히 내려진 결심
그러던 어느 밤에도 나는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반년째 같은 동네만 확대하고 있었으니, 지도 앱도 슬슬 지겨웠을 것이다. 그러다 밀양역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 속에 오래된 역사의 지붕선이 또렷이 보였다. 익숙한 곡선이었다. 어릴 적 등하굣길에 매일 지나치던 그 처마. 몇십 년 만에 화면 속에서 마주하자,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그런데 그 지붕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지붕이었는지는,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처마는 내가 어릴 때 보던 것이 아니었다. 밀양역은 지난 사오십 년 사이 몇 번이나 헐리고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눈물까지 글썽였는데 알고 보니 남의 지붕이었다. 울음 값을 돌려받을 데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잠깐 허탈했다. 내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것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나 싶어서.
하지만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그게 오히려 더 정확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이 그리워하는 것은 애초에 벽돌과 기와가 아니라, 그 아래를 지나던 자신의 발걸음, 그 시절의 냄새와 온도 같은 것일 테니까.
그 역에서 처음 기차를 탄 것이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친척 집에 가던 길이었다는 것만은 또렷하다. 어린 마음에 기차라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창밖으로 스쳐 가는 논밭을 코가 유리에 닿도록 붙어서 구경했다. 그날 유리창에 남긴 코 자국이, 아마 내 인생 첫 여행 기록이었을 것이다.
그 집에 도착한 첫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시절, 조카까지 살뜰히 챙길 여유가 없는 집도 많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계산을 할 수 있었지, 그때는 그저 서운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견뎠다.
몇 년 전, 그 집의 어른을 마지막으로 찾아뵌 적이 있다. 기차에서 내린 어린 나를 맞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이미 연세가 많고 기억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방금 한 말도 잊고,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분은 뜬금없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때는 몰랐어. 니한테, 니들한테 잘 못 해준 거.”
정확히 무엇을 사과하는 건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여유가 없었는지, 그리고 그 여유 없음이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새겨졌는지를, 흐려진 정신 속에서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괜찮아요.”
진심이었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 순간, 몇십 년간 붙들고 있던 서운함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어. 됐다.”
혼잣말이 툭 나왔다.
결심이라기보다는 항복 선언에 가까웠다. 반년을 버티던 마음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그 지붕 앞에서 순순히 손을 들었다.
지붕은 몇 번이나 부서지고 다시 세워졌다. 서운함을 안겼던 손도, 그 손을 다시 마주 잡던 손도 이제는 다른 모양이 되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 이것이었다.
껍데기는 바뀌어도, 그리움은 껍데기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캐리어부터 꺼냈다. 이번에는 다시 넣지 않았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던 밤,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간다.”
한 글자도 더 붙이지 않았다. 몇 초 뒤 답이 왔다.
“드디어.”
그 한 단어 안에, 반년 치의 “엄마, 또 그 생각 하는구나”가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문자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답장 대신 그냥 웃었다.
***
떠나기 전, 영국의 44번지는 필리핀 친구 글레나에게 맡겼다. 열쇠를 건네주던 날, 나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보일러는 이렇게, 수요일 모임은 이렇게, 왓츠앱 그룹은 이렇게. 그녀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세 번째쯤 되자 그녀가 내 다음 말을 먼저 했다. 마지막으로 열쇠를 손에 쥐여주자, 그녀가 말했다.
“불은 계속 켜둘게요.”
낮에도 불을 꺼뜨리지 못했던 루턴의 그 여름부터, 수요일마다 주전자를 올리던 44번지의 아침까지. 그 불빛의 역사를 그녀가 다 알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 짧은 한마디가, 바통을 이어받는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44번지는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 집에서 불을 계속 켜두겠다고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