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2년, Broadbottom, 귀향의 조짐
44번지의 문이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줄처럼 자리를 잡아갈 즈음, 내 마음은 천천히 고향 밀양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린 움직임으로.
수요일마다 차를 따르고, 창가 자리를 정리하고, 왓츠앱 메시지에 "네, 스콘 좋아요" 같은 답을 보내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방향의 바람이 슬금슬금 불고 있었다. 몸은 영국에 있는데 마음은 어느새 여권 사진관 앞에 줄을 서 있는 격이었다.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문득 창밖을 보았다. 영국의 참나무 한 그루 위로, 어린 시절 밀양 집 마당의 감나무가 겹쳐 보였다.
고무장갑을 낀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감나무 아래서 홍시를 주워 먹던 어린 여자아이가, 개수대 앞에 서서 폭삭 늙어버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했다. 표정이 딱, "니 여서 뭐 하고 있노" 하는 얼굴이었다.
"…와, 나 이렇게 늙었어? 그것도 영국 부엌에서, 고무장갑 끼고?"
인생의 깨달음이란 대개 노을 지는 바닷가나 눈 덮인 산 정상에서 온다던데, 나는 하필 설거지통 앞에서 그걸 맞이하고 있었다.
긴 타향살이 동안 아무리 근사한 선데이 로스트를 먹어도 구수한 멸치 된장국만 못했고, 아무리 유창하게 영어를 써도 사투리 섞인 "밥 뭇나?" 한마디가 주는 뭉클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조금씩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갔다가, 마지막에는 짠물을 토해내며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다만 연어는 돌아가서 장렬히 생을 마감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밀양에 작은 아파트 한 채와 캠핑카 한 대를 사는 쪽이 훨씬 현실적인 귀향이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다 죽느니, 할부로 캠핑카를 뽑는 쪽이 내 체질에 맞았다. 연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죽음으로 완성되는 서사보다는 할부금이 완납되는 서사가 나에게는 훨씬 감동적이었다.
반년 가까이 밤마다 노트북을 펼쳐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밀양 시내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갔다.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 자주 가던 시장, 두 시간을 걸어 다니던 중학교까지.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등굣길이 이제는 손가락 하나 폭도 되지 않았다. 인생 절반을 걸려서 겨우 줄어든 거리가 고작 1인치였다.
한국에 있는 딸에게 지나가듯 전화를 걸어 물은 적도 있다. "밀양 요즘 날씨 어떻노." 별 뜻 없이 묻는 척했지만, 딸은 대뜸 알아챘다. "엄마, 또 그 생각 하는구나." 나는 아니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짓말 실력만큼은 칠십 가까이 되도록 하나도 늘지 않은 모양이었다.
딸은 그 뒤로도 몇 주에 한 번씩 물었다. "결국 갈 거지?" 나는 매번 "생각 중"이라고만 답했다. 그런데 '생각 중'이라는 말이 벌써 다섯 달째 재방송되고 있다는 걸,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침이 밝으면 다시 마음이 접혔다. 부엌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수요일마다 얼굴을 비추던 동네 어르신들의 웃음소리 같은 사소한 것들이 발목을 붙잡았다. 캐리어를 꺼냈다 넣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 캐리어는 반년 내내 옷장 문 앞에 서 있었다. 넣지도, 완전히 꺼내지도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