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하려면 산을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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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비주류여행자

전화 한 통이 반나절 일이었다


이퐁고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처음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막상 며칠을 지내다 보니 그 불편함이 생각보다 컸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공기나 전기, 수도 같은 것들이다. 평소에는 산소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숨을 쉬지만,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면 산소통의 잔량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잠비아 시골에서의 생활도 가끔은 그런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씩 의식해야 했다.


전화도 그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누르면 된다. 받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면 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 하지만 이퐁고에서는 전화 한 통을 하려면 마음부터 먹어야 했다. 사람들은 전화가 필요하면 산으로 올라갔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가까운 언덕 정도를 생각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신호가 조금 잡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고 약 한 시간을 이동한 뒤, 다시 산길을 30분쯤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산 중턱의 큰 바위 근처까지 가야 겨우 휴대전화 신호가 잡혔다. 전화 한 통을 위해 왕복 몇 시간을 움직여야 하는 셈이었다.



첫 번째는 트럭을 얻어 탔다


운이 좋게도 처음 전화를 하러 갔을 때는 기지국 공사를 하던 인부들의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당시 이퐁고 한쪽에서는 휴대전화 기지국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오후에 마을을 돌아다니다 공사 현장을 자주 지나쳤고, 사람이 부족해 보이면 그들과 함께 와이어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 얼굴을 마주치고 함께 땀을 흘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어느 날 전화를 하러 가야 한다고 하자 그들의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오늘은 쉽게 다녀오겠구나.’ 하지만 역시 이퐁고에서는 그렇게 쉽게 끝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트럭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뒤에는 결국 내려서 산길을 걸어야 했다. 한참을 올라가자 큰 바위가 나타났다. 누가 만들어 놓은 통신시설도 아니었고, 전화가 잘 터지는 곳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큰 바위였다.


바위 위에 올라서자 정말 휴대전화에 신호가 잡혔다. 그것도 완전히 잡히는 것이 아니라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통화를 해도 상대방 목소리가 들렸다가 끊겼다가 했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진짜 여기까지 와야 전화가 된다고?’ 조금 황당했지만, 어쨌든 전화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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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들의 트럭을 얻어 타 산으로 가는 길



두 번째부터는 자전거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전화를 할 때마다 기지국 인부들의 트럭을 얻어 탈 수는 없었다. 다시 연락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이퐁고에서 자전거는 꽤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다. 자동차는 거의 없었고, 걸어가기에는 먼 곳이 많았다. 나 역시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자전거를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편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전거 자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전거와 많이 달랐다. 변속기어도 없는, 옛날 한국 시골에서나 볼 법한 투박한 자전거였다. 요즘 자전거처럼 가볍지도 않았고, 오르막에서는 도움을 받을 만한 기어도 없었다.


게다가 길은 붉은 흙으로 된 비포장도로였다. 울퉁불퉁한 곳도 많았고, 움푹 패인 곳도 많았다. 평평한 길에서는 그럭저럭 탈 만했지만, 오르막이 나오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어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이동한 뒤 산 아래 마을에 자전거를 세워 두었다. 거기서부터는 다시 걸었다. 산길을 30분쯤 올라가니 지난번에 왔던 바위가 나타났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희미하게 신호가 잡혔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휴대전화 화면의 작은 안테나 표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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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방문한 바위



바위 주변에 버려진 로드 충전권


두 번째로 갔을 때는 주변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바위 틈과 흙바닥에 작은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버려진 종이쪼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대부분 휴대전화 로드(load) 충전권이었다. 당시 잠비아에서는 선불로 통화금액을 충전해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가게에서 로드 충전권을 구입한 뒤, 표면의 스크래치를 긁어 나온 코드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하면 그만큼 통화금액이 충전되는 방식이었다. 바닥에 버려진 로드 충전권들을 보는 순간 바로 이해가 됐다. ‘아, 사람들이 다 여기로 전화하러 오는구나.’ 그 큰 바위가 사실상 이 일대의 공중전화 부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올라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급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로드를 충전해 통화를 마친 뒤, 다 쓴 충전권을 그 자리에 버리고 다시 산을 내려갔을 것이다.

안내판 하나 없는 산 중턱이었지만, 바닥에 흩어진 로드 충전권들이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 바위는 사람들이 바깥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었다.


IMGP2744.JPG바위 주변에 버려진 휴대폰 로드 충전권



산까지 올라왔는데 통화는 짧았다


몇 시간을 움직여 산까지 올라왔으니 전화를 오래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신호가 워낙 불안정했다. 조금 전까지 잘 들리던 목소리가 갑자기 끊기기도 했고, 서 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만 움직여도 신호가 약해졌다. 그래서 전화가 연결되면 필요한 이야기부터 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언제 다시 연락할 수 있을지. 통화는 대체로 짧았다.


그날은 나보다 먼저 잠비아로 파견된 친구들과 통화를 하려고 바위를 찾았다. 내가 근무하던 치봄보 지역으로 Task Week를 왔다기에 안부차 전화를 걸었다. Task Week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던 DI들이 잠시 다른 프로젝트 지역으로 이동해 다른 지역의 프로젝트를 체험하는 일종의 교환근무였다. 긴 통화는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서로의 안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기껏 산까지 올라왔는데 통화가 끊기면 다시 연결될 때까지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한 발 옮기면 들리고, 또 한 발 옮기면 끊겼다. 한국에서는 전화가 너무 쉬워서 별 의미 없는 이야기까지 한참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연락하기가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필요한 말만 남았다. 전화가 귀해지니, 말도 귀해졌다.



신호는 몇 걸음 만에 다시 사라졌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다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야 했다. 산길을 내려가 자전거를 세워 둔 마을로 향했다. 재미있는 건 바위에서 조금만 내려와도 휴대전화 신호가 금세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몇 분 뒤면 다시 연락이 끊긴 세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전거를 찾아 다시 페달을 밟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편했다. 해야 할 일을 하나 끝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길을 돌아오며 새삼 생각했다. 전화가 된다는 것.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것.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다는 것. 한국에서는 한 번도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 그런데 이곳 이퐁고에서는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고, 다시 산을 올라야 했다. 잠비아에 온 뒤 자주 떠올리게 된 단어가 하나 있었다.


‘당연히!.’


유치원에는 당연히 교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필요한 물건은 당연히 가게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전화도 그랬다. 당연히 터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그 당연함이 하나씩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곳에서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화가 안 되는 마을에 기지국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무렵, 이퐁고에서는 휴대전화 기지국 공사가 한창이었다. 내가 전화 한 통을 하려고 산을 오르내리던 바로 그 시기에, 마을 한쪽에서는 철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그 과정도 꽤 인상적이었다. 크레인 같은 중장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인부들이 와이어를 함께 잡아당기며 자재를 위로 올렸다. 아래에서 사람들이 줄을 힘껏 당기면 철탑의 자재가 조금씩 올라갔다. 나도 지나가다 몇 번 그 줄을 함께 잡아당겼다.


언젠가 저 기지국이 완성되면 이퐁고에서도 휴대전화가 터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산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또 전화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아직은 기지국이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전기와 통신망이 들어오면 마을 주민들의 생활도 조금씩 달라진다. 내가 잠비아 시골을 돌아다니며 본 바로는 전기가 들어오는 곳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나 드라마, 영화 같은 외부의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정보와 다른 지역의 생활 모습을 접할 기회가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런 정보 수용성 증가는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체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은 음주 외에도 다양한 오락거리가 있었기에 음주로 인한 사고가 비교적 적었다.


이퐁고에도 그런 변화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산을 올라가 휴대전화 신호를 찾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줄을 당겨 새로운 기지국을 세우고 있었다. 15년전 내가 전화하러 산을 오르던 일도 지금은 옛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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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신기하게 느껴진 것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별로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화가 필요하면 산으로 가면 됐다. 멀면 자전거를 타면 됐고, 자전거로 갈 수 없는 곳부터는 걸으면 됐다.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불편하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나는 새로운 불편에 하나씩 적응하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잠비아에 온 뒤 나는 자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불편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왜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지가 조금씩 보였다. 전화도 그랬다. 처음에는 생각했다. ‘전화도 안 터지고 전기도 없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 그런데 어느새 나도 자전거를 타고 산에 올라 전화를 하고, 다시 내려와 숙소로 돌아가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산을 오르는 일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그 무렵의 나는 이렇게 생각할 정도는 되어 있었다. ‘전화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잖아. 산에 올라가면 되니까.’ 처음 이퐁고에 왔을 때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곳에 적응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어쩌면 바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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