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시골 오지에 온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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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비주류여행자

이곳에 온 목적?


이퐁고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돌아보면 그건 잠비아에서 자주 겪는 방식이었다. 이동은 먼저였고, 설명은 늘 나중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들었지만, 거기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막상 가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퐁고에서도 그랬다.


처음 며칠 동안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여기는 치탄타보다 더 깊은 시골이라는 것, 전기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오지라는 것, 가게 하나와 펍 하나가 사실상 마을 중심이라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이곳에 도착해 얻은 정보의 전부였다. 그러다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에 참석하며 조금씩 그림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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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의 오지 마을 이퐁고

세계 환경의 날을 앞두고


2011년 6월 6일, 이곳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 론칭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왜 이퐁고에 왔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길었다. ‘루캉가 습지의 생물 다양성 및 천연자원 관리의 지역 슬롯 참여(Community Involvement In Management of Biodiversity Resources and Natural Resources in the Lukanga Wet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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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오전


이름만 들으면 조금 멀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배경은 의외로 단순했다. 잠비아의 중요한 습지이자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루캉가 습지(Lukanga Wetlands)와 그 주변 숲이 무분별한 자원 채취 때문에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는 것. 낚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지고, 야생동물 밀렵이 이어지고, 산불과 숯을 만들기 위한 벌목, 과도한 방목까지 겹치면서 습지와 숲이 버티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사업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분명했다. 습지 인근 100개 마을의 자원 관리 역량을 키우고, 약 2,000 가구, 12,000명의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만들고, 약 50,000헥타르 규모의 천연림을 보호 구역으로 설정해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외부 기관이 와서 “이렇게 하세요” 하고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원을 관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정부 쪽에서는 잠비아 야생동물국과 관광환경천연자원부가 협력했고, 자금은 UNDP와 GEF(Global Environment Facility), KZF(Keepers Zambia Foundation) 외부 파트너들이 지원했다. 종이 위에서 보면 꽤 커다란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내가 처음 마주한 현장은 그런 거대한 말보다 훨씬 작고 구체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창한 말로 하면 환경보호 프로젝트였지만, 현장에서 그것은 훨씬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무를 덜 쓰는 스토브를 만들고, 손을 씻는 시설을 세우고, 화장실을 보급하고, 가축을 보다 효율적으로 키우는 구조물을 만드는 일이었다. 쉽게 말하면, 숲을 다 베어 먹지 않으면서도 오늘의 삶을 조금 덜 힘들게 만드는 방식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 주는 자리였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이퐁고에 온 이유는, 바로 그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운동장 위에 작은 마을을 세우다


막상 현장에서 내가 맡은 일은 거창한 정바카라 설명이 아니었다. 내가 맡은 주된 역할은 행사장에 설치할 시설물들을 준비하고, 그 작업이 잘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일이었다. 말이 관리감독이지, 실제로는 주민들과 함께 하루 종일 현장을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붙들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전이면 행사장처럼 쓰일 넓은 공터로 나가, 그 위에 하나씩 전시물을 세워 나갔다.


우리가 준비하는 건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가 말하는 ‘환경보호’가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들이었다. 나무를 덜 쓰는 고정식 진흙 아궁이(Fixed Mud Stoves), 물과 위생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시설, 가축을 효율적으로 기를 수 있는 구조물들. 숲을 지키는 일은 결국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환경보호를 생활기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염소 우리, 닭장, 곡식을 보관하는 raised house, 퇴비를 만드는 시설, 우물 시추 시연, 야외 화장실, 그리고 흙으로 만든 조리용 스토브 같은 것들. 하나하나 따로 보면 소박한 구조물이었지만,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니 작은 마을 하나를 새로 세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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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우리 만들기


문제는 거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었다. 도시라면 트럭으로 실어 오면 끝났을 물건들이, 이곳에서는 사람 손과 시간으로만 완성되었다. 숲에서 나무를 베어 와 기둥을 세우고,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불려 끈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것을 나무들로 역어 기둥과 지붕을 만들고, 완성된 이후에는 종이에 이름을 적어 전시물마다 붙였다. 어떤 날은 기둥을 먼저 세웠고, 어떤 날은 초가지붕을 얹었고, 어떤 날은 풀과 나뭇가지를 다시 다듬어 모양을 잡았다. 그렇게 거의 열흘 가까이, 매일 하나씩 공터 위에 구조물이 늘어 갔다.


낮에는 아이들이 그 공터 옆에서 축구를 했다. 한쪽에서는 전시물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맨발의 아이들이 공을 따라 뛰어다녔다. 그 풍경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이곳에서는 삶과 일이 그렇게 또렷하게 나뉘지 않았다. 행사 준비도 마을의 일상이었고, 아이들의 놀이도 그 옆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왜 하필 내가 이걸 감독해야 하지?


그 시절의 나는 종종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겉으로 보기엔 내가 무언가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 같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정확히 뭘 알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필요한 이유는 대단한 전문성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외부에서 온 사람, 특히 외국인에 대한 일종의 동경과 권위 같은 것이 있었다. 같은 말을 현지인이 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도, 외국인이 와서 말하면 훨씬 더 진지하게 듣고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내가 이곳에 파견된 이유도 어느 정도는 거기에 있었다.


외국인인 내가 현장에 있으면 사람들이 더 집중하고, 말도 더 잘 듣고, 일도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 나니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했다. 내가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장에서 더 큰 효력을 갖는다는 뜻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실망도 했다. 하지만 곧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도 조금씩 변해 갔다. 이곳에서의 삶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도끼질을 배우고, 그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하나씩 익혀 갔다.


처음에는 손도끼로 나무를 다듬을 줄도 몰랐고, 어디에 우물을 파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이곳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나는 외부에서 온 사람이었고, 프로젝트의 언어를 조금 더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뭔가를 만드는 기술, 재료를 아끼는 법, 이 땅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누군가 중간에서 흐름을 맞추고, 외부 기관이 원하는 형식과 마을 사람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방식 사이를 이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마 그 자리가 그때의 내 자리였을 것이다. 모든 걸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일 저 일을 엮어 가며 현장을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내가 이퐁고에서 했던 일은 ‘전문가’의 일이라기보다, 외국인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현장의 빈자리를 메우는 일에 더 가까웠다. 물론 내가 대단한 전문성도 갖추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끼 하나면 모든 게 뚝딱!


그 무렵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들이 도끼 하나만으로 웬만한 걸 다 만들어낸다는 사실이었다. 나무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기둥을 세우고, 틀을 엮고, 지붕을 얹는 일까지 거의 도끼 하나로 해냈다. 처음에는 그저 고된 노동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거기에는 분명한 기술과 순서가 있었다. 도끼로 벗겨낸 나무껍질은 물에 적셨다가 말리면 질긴 천연 밧줄이 되었고, 그 줄로 나무를 묶고 엮으면 작은 건물도 만들 수 있었다. 닭장과 염소우리, 초가지붕 전시물들이 그렇게 형태를 갖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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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 하나면 모든게 뚝딱!


나는 그 과정이 정말 신기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한 것 투성이인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 손에 익은 방식으로 필요한 것을 뚝딱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술이라는 것이 꼭 기계와 공장, 반듯한 부품만을 뜻하는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됐다.


우물을 준비하는 과정도 비슷했다. 우물 시추 시연을 위해 큰 나무 기둥들을 세우고, 시추봉을 걸 구조물을 만들었다. 기계로 단번에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삽으로 파고, 줄로 엮어 몸으로 당기며 손으로 시추봉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방식이었다. 나중에 시연 장면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곳에서의 기술은 장비보다 사람 몸에 가까웠다. 그런 장면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면, 나는 자꾸만 내가 알고 있던 ‘개발’이나 ‘지원’이라는 말이 너무 매끈한 언어였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현장에서는 결국 손이 먼저였고, 몸이 먼저였고, 사람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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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을 시추 하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작은 회의들


오전에는 주로 행사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마을을 돌아다녔다. 주민들을 만나 회의를 하며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설명하고,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큰 나무 아래에 사람들을 모아 앉히고, 자전거를 나무에 기대 세워둔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아이를 안은 엄마들도 있었고, 멀찍이 서서 듣는 아이들도 있었다.


회의가 늘 물 흐르듯 흘러가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당장 자기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 반응들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회의는 필요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단순히 구조물을 만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는지, 왜 이걸 하는지, 앞으로 자기 삶과 어떤 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해야 했다. 결국 프로젝트라는 건 종이 위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과 표정 속에서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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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과의 회의



전화가 안 터지던 마을에 세워지던 철탑


오후에 마을을 돌다 보면 또 다른 풍경과 마주치곤 했다. 당시 이퐁고는 전화가 터지지 않던 곳이었다. 그런데 마침 마을 한쪽에서는 휴대전화 기지국 공사가 한창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철탑조차 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아니라 사람들의 힘으로 세워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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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으로만 기지국을 세우는 장면


여러 사람이 와이어를 함께 잡아당기면, 위에 달린 자재가 조금씩 올라갔다. 나도 가끔 그곳에 가서 줄을 함께 당겼다. 인부들은 그런 나를 늘 반갑게 맞아 주었다. 금세 가까워진 덕분에, 어느 날에는 그들의 트럭을 얻어 타고 전화가 터지는 산에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가서 손을 보탰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도 가까워졌다. 인부들은 대부분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왔다고 했다. 이렇게 시골을 돌아다니며 공사를 계속 이어 간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풍경은 꽤 상징적이었다. 한쪽에서는 세계 환경의 날 행사를 준비하며 손도끼와 흙, 풀과 나무로 생활기술 전시물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의 손으로 휴대전화 기지국 철탑이 조금씩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래된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같은 시골 마을 안에서 동시에 자라고 있던 셈이었다.



점점 모양을 갖춰 가던 행사장


행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자 공터는 확실히 행사장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초가지붕 구조물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고, 흙으로 만든 스토브도 제법 형태를 갖췄다. 닭장과 염소우리, 비료를 만드는 구덩이, 묘목과 농업 관련 전시물까지 점점 제자리를 찾았다. 행사 전날에는 이름표도 붙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 봐도 무엇을 보여 주려는 자리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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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는 귀빈들을 위한 붉은 천막이 들어섰고, 손으로 그린 지도와 사업 소개 자료가 걸릴 자리가 정리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국가를 연습했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구조물들을 점검했다. 기둥이 흔들리지는 않는지, 초가지붕이 바람에 날리지는 않는지, 이름표가 떨어지지 않는지, 시연 순서는 문제없는지 하나씩 확인했다.


그 무렵의 나는 꽤 뿌듯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냥 지나가는 외부인이 아니라 이 준비 과정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열흘 가까이 주민들과 함께 풀을 엮고, 나무를 세우고, 자료를 붙이고, 회의를 돌며 조금씩 만들어 온 것이 눈앞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도움이 아닌 배움의 시간들


행사 당일이 되자 생각보다 훨씬 큰 사람들이 왔다. UNDP 관계자 등 유럽에서 온 사람들도 보였고, 잠비아 정부 쪽 장관급 인사들도 참석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흙바닥 공터 위에 세운 풀지붕 전시물과 붉은 천막 아래의 자리였지만, 그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면면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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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관광환경천연자원부 장관과 관계 기관에서 온 귀빈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아주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풀과 나무, 흙과 손도끼로 만든 구조물들 앞에서 귀빈들이 설명을 듣고, 주민들은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멀찍이 서서 시연을 지켜보는 풍경. 그날의 이퐁고는 초라한 시골 마을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무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꽤 뿌듯했다. 열심히 함께 준비했으니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조금은 분명해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2주는 단순한 행사 준비 기간이 아니었다. 내가 이퐁고라는 곳을 이해하기 시작한 첫 시간이었고, ‘도우러 왔다’고 믿었던 내가 사실은 더 많은 것을 그들로부터 배우고 있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던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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