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디우(2)
2017년, 다섯 번째 인도 여행에서 나는 다시 디우를 찾았다. 2015년에 처음 왔고, 201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해산물도 여전히 좋았지만, 이번에는 지난해 만난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
처음 디우에 왔을 때는 닐레쉬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네 번째 인도 여행에도 처음 며칠은 그곳에 머물렀다. 가격이 저렴했고,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숙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머물수록 불편한 점도 분명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짠물이 나오는 샤워였다. 바닷물이 섞인 물로 몸을 씻는 일은 잠깐은 이국적인 경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며칠이 지나면 낭만보다 피로가 먼저 쌓인다. 결국 나는 나흘쯤 머문 뒤, 맞은편에 새로 생긴 드림비전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겼다.
드림비전은 그때 내게 뜻밖의 발견이었다. 닐레쉬보다 훨씬 깨끗했고, 더 조용했고, 무엇보다 ‘머물기 좋은’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곳을 운영하던 사람은 밀레쉬 부부였다. 남편인 밀레쉬는 포르투갈 국적, 그의 아내는 영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둘 다 인도계였고, 인도와 깊이 연결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OCI(Overseas Citizenship of India)로 인도 내 거주 및 취업의 자유 등 영구 거주에 준하는 혜택을 누린다고 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디우라는 도시 자체가 이미 그런 결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도 안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조금 비껴나 있는 곳. 분명 인도인데, 인도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진 도시.
드림비전 게스트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부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직접 사 온 해산물을 요리해 먹을 수 있었고, 바비큐 공간도 있었다. 디우에서는 숙소가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라 식탁의 연장이었다. 시장에서 산 랍스터를 들고 돌아와 숯불 위에 올려놓고, 맥주를 꺼내 마시며 천천히 익어가는 걸 기다리는 시간. 그 기다림마저 여행의 일부가 되는 곳이었다.
밀레쉬와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는 말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숙소 이야기, 디우 이야기, 관광객 이야기, 인도 이야기.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느껴졌다. 디우가 내게 특별해진 건 바로 그 지점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그의 차를 타고 디우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가족 농장을 함께 찾았다.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바다와 술과 해산물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섬 밖에, 그렇게 넓은 농장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였다. 밀레쉬는 그 농장을 단순히 가족의 땅으로만 두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여행자들을 받아 함께 머무르게 하고, 농장을 돌보며 여러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WWOOF 같은 방식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유기농 농장에 머물며 하루의 절반 정도는 일을 돕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곳의 생활과 문화를 배우는 식의 여행. 디우가 내게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실제로 이어지는 장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농장을 둘러본 뒤 우리는 근처의 사나 동굴(Sana Caves)을 찾았다. 오래된 불교 암각 동굴군이라고 했다. 직접 가보니 규모도 생각보다 컸고, 시간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관리 상태는 좋지 않았다. 방치에 가까웠다. 밀레쉬는 이런 유적이 인도에는 여전히 많다고 했다.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걸 모두 알면서도, 정작 돌보는 손길은 충분히 닿지 않는 곳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도 디우를 떠올렸다. 너무 유명하지 않아서, 그래서 오히려 더 천천히 남는 장소들. 사나 동굴도, 디우도, 그런 결을 닮아 있었다.
또 하루는 디우에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툴시샴(Tulsishyam)이라는 곳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듣고 스쿠터를 빌려 길을 나섰다. 지도상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가는 길에는 국립공원이 끼어 있었다. 그것도 사자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자는 아프리카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도에는 아시아사자도 산다. 물론 아프리카사자보다 몸집이 작고, 그 수가 적어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쿠터를 타고 그 숲길을 지나가는 여행자의 마음이 편안할 리는 없었다.
공원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달리며 나는 쓸데없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혹시 사자가 길가에서 튀어나오면 어쩌지.’ 스쿠터 엔진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고, 숲의 그림자는 괜히 더 깊어 보였다. 길가로 지나가는 인도 사람들의 오토바이를 보며 나도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마음 한구석은 끝내 긴장을 놓지 못했다. 다행히 사자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곳에서 사자를 본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고 했다. 대신 사슴과 공작 같은 동물들만 몇 번 눈에 띄었다. 맹수는 없었지만, 긴장은 끝까지 남았다.
그렇게 도착한 툴시샴은 내가 기대했던 온천과는 조금 달랐다. 여행 중 쌓인 피로를 뜨거운 물에 풀고 싶다는 단순한 기대가 있었는데, 정작 물은 너무 뜨거워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몸을 담그는 온천’이 아니라, 뜨거운 물이 솟는 장소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 나는 인도에서 ‘핫 스프링’이라는 말을 보면 섣불리 기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우리가 익숙한 온천의 감각까지 그대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 근처에서 들른 힌두교 사원들은 꽤 인상적이었다. 툴시샴 만디르(Tulsishyam Mandir)와 툴시-루크마니 사원(Tulsi-Rukmani Temple).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과 길, 낮은 건물들 앞에서는 사자에 대한 두려움도 온천에 대한 실망도 잠시 옅어졌다.
처음 디우를 찾았을 때는 해산물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한 번 더, 그리고 또 한 번 더 찾아오면서 다시 볼 얼굴과 함께 나눌 식탁이 생겼다. 디우는 어느새 내게 돌아가는 곳이 되었다.
밀레쉬와 함께 농장과 사나 동굴을 둘러보면서는 바닷가 도시 바깥의 생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해산물을 사러 가는 길뿐이던 내 동선에, 그와 함께 다녀온 길들이 더해졌다.
지금도 디우를 떠올리면 숯불 앞에서 웃던 저녁과 부엌에서 나누던 대화가 함께 생각난다. 다시 그 식탁에 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