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쓰는 기업과 인간, 정말 '혁신'하고 있나, 질문?
제로 투 원(Zero to One).
어제오늘 계속 머릿속을 맴돈 한 단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0에서 1'로 나아가는 혁신과 그 과정에서 얻는 독점의 가치를 뜻하는 말로,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팔란티어 회장인 피터 틸의 <제로 투 원(Zero to One)>이란 바카라으로 유명해졌다.
나는 매월 30만 원 이상 바카라을 사고, 아끼는 인생바카라이 절판될까봐 연남서가의 서가지기를 신청한 (전) 교보문고 마케터이자 바카라친자(바카라에 미친 자)로서, 분기별로 바카라을 정리하고 매년 100권 이상의 바카라을 떠나보낸다.
2년 전 첫 신혼집을 나올 때는 200권 가까이 정리했던 것 같다. 특히 스타트업 시절 경전처럼 읽었던 바카라이 많았는데, 몇 권만 남겨두고 대부분 기부하거나 버렸다. 스타트업 종사자의 필독서이자 바이블인 <제로 투 원(Zero to One)>도 내 곁을 떠난 바카라 중 하나였다.
그때는 내 인생에 다시 제로 투 원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잘만하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갔고, 사내에서 ‘마케팅 전문가’ 포지션을 공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챗GPT가 쏘아올린 AI 대중화 기술을 시작으로 빠르게 AI 드리븐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시 ‘0에서 1’로 나아가는 혁신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다. 이전에는 국가, 슬롯, 기업만 제로 투 원 했다면, AI 문명은 개인에게도 제로 투 원을 강요한다.
“자, 오늘부터 각자 에이전틱 AI로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실시간 트래킹 합니다. AI를 활용한 생산성 하락이 누적될 경우 저성과자로 평가되며, 해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은 게임 업계에서 큰 스튜디오에 다니는 시니어 개발자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HR팀에서 에이전틱 AI 평가 툴을 배포하고 거기에 일일 업무일지를 작성하라는 공지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 평가 시스템이 어떤 기준으로 설계된 건지 궁금해했고, 명확한 가이드가 없는 AI 인사 평가 툴 사용이 조직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오늘 AI로 얼마나 성과를 내셨나요?’
과연 오늘 업무에 쓴 에이전틱 AI의 효용성을 정량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정한 성과란 매일매일의 땀과 노력이 쌓여 어느 임계점을 돌파해야 만날 수 있는 과실이다. 저 질문은 마치 오늘 당신이 AI를 이용해 쓴 코드가 하루 매출 N원을 내었다는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 달라는 말과 같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전환 수익을 트래킹 하는 것처럼.
개발은 마케팅이 아니지 않나. 시스템의 구조를 개선하고, 유지 보수와 사이드 이펙트를 고려해 신중하게 커밋하고, QA팀에서 쏟아지는 버그 리포트도 쳐내야 한다. R&D와 운영을 끊임없이 돌려야 하는 개발팀에게 명확한 AI 이니셔티브가 없는 평가 툴 도입은 의미 없이 토큰만 소비하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성과 측정 방법이 도입되는 이유가 있다. AI 기술 발전의 진원지인 실리콘밸리의 CEO들이 ‘능력 있는 개발자 = 토큰 사용량’ 공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연봉 50만 달러 엔지니어라면 최소 25만 달러어치의 토큰을 써야 한다" - 젠슨 황(엔비디아 CEO)
여기서 의문이 든다. 비즈니스 임팩트를 따지지 않고, 단순히 토큰을 많이 소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AI 드리븐 한 조직은 인당 수백, 수천, 수억을 토큰 비용으로 태운다고 한다. 그들이 정말로 10X 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지 제대로 측정, 관리가 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개인에게 셀프 평가를 맡기면, 어디에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성과 데이터는 충분히 조작될 수 있다. 프로젝트의 병목이나 치명적 오류를 초래하는 코트를 커밋해도, 그저 토큰 사용량을 기준으로만 평가한다면… 결과적으로 잘못된 커밋을 되돌리는 시간과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AI 도입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될 수 있다.
실례로 2023년 국내 모 금융사에서 콜센터 직원의 대다수를 해고하고 AI 상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런데 금융 고객은 아주 복잡한 상담을 필요로 한다. 고객의 재산이 걸린 중요한 상담을 AI는 해결해주지 못했다. 그 때문에 강성 VOC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브랜드 신뢰도는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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