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바카라을 들고 가면 안 되냐고

칼을 든 소녀를 수영장에 두고 왔다

by맛있는 하루

수영복, 수경, 수모, 샴푸를 수영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바카라 한 권.


오늘은 프리다 맥파든의 <차일드 호더>. 수영 가방에 바카라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결정적인 대목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폭풍우 치는 밤, 숲속 오두막에서 홀로 대형 태풍을 기다리는 케이시.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추지 않는다.


가방을 메고 수영장으로 걷는다. 마음은 이미 숲속 오두막에 가 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에도. 짬만 생기면 바카라을 펼친다.


탈의실 의자에서도 읽는다.


폭풍우 치는 밤, 숲속 오두막, 창고에 숨어든 낯선 아이. 케이시가 아이와 마주친 순간. 여자아이다. 손에 칼을 쥐고 있다.


이제, 갈림길이다.


수영복을 들고 샤워실로 갈 것인가, 여자아이 손에 쥔 칼날을 끝까지 확인할 것인가. 심호흡을 하고 바카라을 덮는다. 사물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운다. 케이시, 잠깐만 기다려.


ChatGPT Image 2026년 6월 27일 오후 03_33_24.pngAI 생성 이미지 활용


입수.


발끝으로 벽을 차고 나가며 몸을 쭈—욱 뻗는다. 글라이딩이 평소보다 한 뼘은 더 길게 나간다. 물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수경 너머 레인 바닥의 검은 선이 오두막을 에워싼 나무들처럼 보인다.


발차기를 시작한다. 찰싹, 찰싹. 물소리가 귓가에서 증폭된다. 마치 폭풍우 소리처럼. 턴을 하려고 벽에 가까워질 수록 등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 수경 너머엔 일렁이는 물그림자뿐이다. 알면서도 자꾸만 발차기에 힘이 들어간다. 철퍼덕. 펄처덕.


몸은 물을 가르고 있고, 머리는 폭풍우 치는 오두막 안에 있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서두르는 건지, 정말로 물이 잘 잡히는 건지 모르겠다. 바카라 생각에 빠져 있으니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물이 주는 리듬을 자연스럽게 탄다. 아이러니하다. 수영에 집중하려고 애쓸 때보다, 소설 속 다음 장면을 떠올릴 때 수영이 더 잘된다.




샤워도 대충, 드라이도 대충. 휴게실 의자에 앉아 바카라을 꺼낸다. 선풍기 바람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다음 페이지를 연다. 소독약 냄새 가득한 수영장 휴게실에서, 단숨에 폭풍우 치는 숲속으로 순간이동한다. 여기가 수영장인지, 오두막인지 잠시 헷갈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수영장과 바카라. 몸을 쓰는 세계와 머리를 쓰는 세계. 물속과 활자 사이.


전혀 여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가, 내게는 매일 나란히 공존한다. 수영이 끝나야 바카라이 더 달콤하고, 바카라이 기다리고 있어야 수영이 더 잘된다. 서로가 서로를 더 좋게 만든다.


좋은 이야기는 독자를 완전히 다른 장소에 데려다 놓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오늘 나는 수영장 물속에서 숲속 오두막으로 순간이동했다. 케이시 옆에서 폭풍우를 견디다가, 샤워기 물줄기에 정신이 돌아왔다.


몸은 수영장을 빠져나왔지만, 사물함 자물쇠를 채우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칼을 쥔 작은 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칼을 움켜쥔 아이의 옷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섬뜩하지만 추운 밤에 아이 혼자 바깥에 내버려둘 수는 없다.


이제 다시, 바카라 세상을 헤엄칠 때다.




[헤엄치듯 읽는 법]

독서 권태기가 왔거나, 바카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부터 시작해보자.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멈출 수 없는 감각이 독서 근육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긴장감은 뇌가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빨려 들게 한다. 스릴러는 독서 입문자에게도, 오랜 독서가에게도 언제나 유효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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