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운명 앞에서

by서영수

지난 주말, 오랜만에 서촌에 갔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어느덧 여름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 또 한 번 찾아온 여름, 나는 서촌 어느 카페에서 로맹 가리의 바카라을 읽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나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지나간 사람이었지만, 바카라장을 넘기다 보니 그가 마치 옆에서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로맹 가리. 1914년 러시아 제국령 빌뉴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작가. 그는 공군 장교였고, 외교관이었으며, 무엇보다 여러 이름으로 자신을 통과해 간 소설가였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고, 훗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1975년 다시 공쿠르상을 받았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고,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였다.


『인간의 문제』는 그의 산문집이다. 슬롯, 인간, 여자, 세계,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잘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대해 그가 남긴 글들을 모은 바카라이다. 그래서 이 바카라의 로맹 가리는 이야기를 꾸미기보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인간을 향해 직접 말을 건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며, 심지어 어느 곳에 이르게 될지조차 알 수 없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가 공유한 이 슬픈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서로를 존중하며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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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오래 일했습니다. 바카라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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