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는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와 발표를 해도 되냐고 물을 때까지 그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논문을 한 번 읽어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는 그녀의 발표를 환영하며, 논문도 기꺼이 읽어주겠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생의 중반,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캐서린 드리스콜. 캐서린은 스토너의 대학원 강의를 들었던 같은 대학의 강사였다. 처음에 그가 보였던 반응은 무관심, 또는 '강사가 내 강의를 들어?' 이런 정도의 호기심에 불과했다. 자신의 감정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발표, 학생 찰스 워커의 방해, 세미나를 주관한 교수로서 스토너의 사과. 그는 그녀의 논문을 검토해 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게 되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별 기대 없이 봤던 그녀의 논문에서 느꼈던 감동, 세미나에서 벌어졌던 찰스 워커의 소동과 로맥스 학장과의 갈등. 스토너는 그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걱정하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을 짓눌렀던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고민도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는 순간 뭔가 정리되면서 그 고민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스토너가 그랬다. 그는 자신의 고민을 캐서린에게 털어놓으면서 비로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사랑.
스토너가 캐서린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젊고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렀고,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캐서린은 그런 그를 이해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랑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이해받는 경험이기도 하다. 스토너에게 캐서린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전까지 혼자 보던 세상은 더 이상 그 세상이 아니다.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들도 중요하게 느껴지고 별로 아름답지 않은 풍경도 나를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힘들었던 상황마저도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과정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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