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

by서영수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박노해 시인의 이 말이 떠오른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다 읽고 바카라을 덮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은 1947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1945년 전쟁 패배 이후 기존의 가치와 계급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몰락한 귀족을 일컫는 '사양족(斜陽族)'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일본 슬롯에 큰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결혼에 실패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가즈코, 그리고 가즈코의 어머니와 그녀의 남동생 나오지입니다. 가즈코는 패전의 아픔과 귀족가문의 몰락이라는 현실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여성으로, 나오지는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어머니는 귀족 출신으로서 신분에 걸맞은 품위와 격조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한 명 더, 나오지의 지인으로 등장하는 작가 우에하라가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이렇게 네 명이지만, 이들은 모두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고, 버티고, 살아남으려는 다자이 자신의 분열된 모습이 이 인물들 안에 나뉘어 담겨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속에서 가즈코가 되었다가 때로는 나오지가 되기도 하고, 어머니와 우에하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전후 시대라는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나오지처럼 절망하고 자포자기할 것인가. 또는 우에하라처럼 현실을 외면한 채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방탕하게 삶을 소모할 것인가. 아니면 가즈코처럼 의욕과 사랑을 불태우며 척박한 현실을 견디고 나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특정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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