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에도 '화양연화'가 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왜 가장 그리워할까

byyour philosophy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가장 찬란한 때였음을 알게 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때를 말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회사생활에도 화양연화가 있을까.


13년을 돌아보면 자랑스러운 순간은 많았다.

첫 승급을 했을 때.
연봉을 크게 올려 이직했을 때.
1년 동안 준비한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전 직원 앞에서 사업 성과를 발표했을 때.


좋은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내 회사생활의 화양연화는 따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신없고, 가장 많이 일했고,

가장 자주 사고가 터졌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왜 좋았을까


당시 우리 팀에는 열두 명 정도의 동료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서비스를 함께 열었고, 운영했고, 결국 문을 닫는 순간까지 봤다.

운영하는 동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아침이면 생각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질까.’

퇴근 후에도 단체방이 울렸고, 주말에도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의 나라면 다시 그렇게 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감정은 ‘힘들었다’가 아니다.


재밌었다.


무슨 일이 터져도 어떻게든 해결할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가 전우가 되는 순간


모든 동료가 전우가 되는 건 아니다.

몇 년을 같이 일해도 동료로 남는 사람이 있고,

몇 달밖에 함께하지 않아도 유난히 깊게 연결되는 사람이 있다.

차이는 시간보다 함께 견딘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자기 일과 남의 일의 경계가 희미했다.

누군가 문제가 생기면 “그건 누구 일이야?”보다 먼저 달려갔다.

한번은 내가 스트레스로 대상포진까지 걸리자 한 동료가 자기 일도 많은데 내 업무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아, 이 사람들은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여행을 가서도 비슷했다.

한 명이 노트북을 켜면 다른 사람은 저녁을 만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야, 이것 좀 봐봐.”

한마디에 모두가 노트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일하고, 먹고, 마시고, 다시 일했다.



그리운 건 고생이 아니었다


그 시절을 아름답게 만든 건 대단한 성공도 아니었다.

서비스가 잘되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문을 닫는 순간까지 함께 봤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성과가 아니었다.

야근도 아니고,
주말에 노트북을 켜던 생활도 아니다.


힘든 순간에 혼자가 아니었던 감각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같이 달려들던 사람들.

하루 종일 고생하고도 그날 벌어진 일을 안주 삼아 웃던 밤.

누군가 무너지면 자기 어깨를 내어주던 마음.


성과는 시간이 지나면 숫자가 되지만,

함께 버틴 기억은 감정으로 남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이렇게 깊은 유대를 나눌 수 있구나.

어떤 순간에는 오래된 친구보다 더 애틋할 수도 있구나.



다시는 같은 계절이 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모두 다른 회사에 있다.

그때의 사람들,
그때의 상황,
그때만 가능했던 마음의 여유까지

똑같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온도와 습도와 냄새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어느 여름밤을 다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일에도 사람과 시기와 상황이 우연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마 그래서 그 시절을 화양연화라고 부르고 싶은가 보다.


당시에는 그것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정신없이 버텼을 뿐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나의 회사생활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내가 가장 빛났던 때가 아니라,
서로에게 가장 많이 기대어 있던 때였다는 것을.


일이 전부는 아니지만,

일하면서 만난 어떤 사람들은 한 시절 전체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래서 힘든 날이면 가끔 그때를 꺼내본다.

나에게도 그렇게 뜨겁게 일했고,
그렇게 마음껏 사람에게 기대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은 오래 힘이 된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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