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세상 아래에서

들리지 않는 세상 속에서, 들리는 척. 괜찮은 척

by느슨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는 사이, 사 년이 지나갔다.

스물넷의 나는 고3 때보다 더 힘들었고, 그 힘든 시간만큼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흘러갔다. 오래지 않아 나는 직감했다.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가는 일은 내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니, 어쩌면 아주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경험이었다고, 이제는 그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스무 살 초반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의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훨씬 더 오래 나를 아프게 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부모님 앞에서 꺼내던 날,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뜻밖에도 안도였다. 더는 숨길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병을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다. 숨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대학을 자퇴하고, 삶의 이유가 사라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던 어느 날,

인터넷 카페에서 간질 환우들의 모임을 발견했다.

요즘의 인스타그램처럼, 그 시절 다음 카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창구였다.

그곳은 시를 쓰며 서로 위로를 건네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정말 행복해지고 싶었던 사람들.


카페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모를 했다. 올림픽 공원을 걷거나, 대학로의 전통찻집 같은 따뜻한 곳에서 차를 마시며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위로의 말도, 몸짓도 없이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이도, 직업도, 학력도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는 이상 서로 묻지 않았다. 슬롯에서는 으레 첫마디에 나오던 것들이, 그곳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나이, 직업, 학력이 궁금하다는 것은 참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다.


손목에 상처가 보이더라도, 얼굴에 멍 흔적이 보이더라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의 상처는 나도 한 번쯤 가졌던 상처이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고,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던 언니의 결심,

삶의 무게를 시로 건네주던 시인 친구,

두 아이 모두 간질을 앓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친구의 회복력,

유명 대학을 다니면서도 세상이 두려웠던 어린 동생까지.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힘을 다해 웃고 있었다.


살아가기로 선택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서로를 응원했다.



그중 아직도 잊히지 않는 친구가 있다.

잦은 발작으로 청력을 잃어 슬롯생활이 쉽지 않았던 그는, 댐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학(金鶴)이었다.

단명할 운명이어서, 어머니가 오래 살라는 뜻으로 십장생 중 하나인 '학'을 이름으로 붙여주었다고 했다. 그는 선비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이름처럼 고고한 시를 썼다.

내가 힘든 날 카페에 시 한 편을 올리면, 그는 어김없이 따뜻한 시로 답해주었다.


천년을 넘게 살라는 어머니가 소망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과 달리,

정작 그는 어느 날 홀연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예고도 없이. 말도 없이.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꾹꾹 눌러 담은 침묵으로 그를 보내주었다.

댐이 내뿜는 굉음 속에서, 그는 날마다 조금씩 더 세상의 소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 동료들은 그저 그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잦은 발작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하고,

자신의 병을 숨긴 채 홀로 버텨왔을 그의 하루를 떠올렸다.

잠이 들지 않아 고통스러웠을 늦은 밤과, 눈을 뜨기 싫었을 아침을.


들리지 않는 세상 속에서, 들리는 척. 괜찮은 척했을 친구.

이제는 그 고단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기를,

친구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래서 울지 않았다.


김학은 학답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누구보다 따뜻한 세상을 기대했을 그가, 세상의 차가움과 맞서 싸우며 감내했을 외로움.

생전에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학은 자유롭게 날면서 세상을 다녀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소란한 세상 소리 따위 아득히 아래에 두고, 고요하고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날고 있기를.


학은 날아갔지만, 나는 여기 남기로 했다.

내가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어 했다는 걸, 학은 알고 있었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돌아와 조용히 숨을 고르는,

그 별것 아닌 하루를 내가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지를.

그러니 그라면 분명 바랐을 것이다.


내가 그 평범한 하루를, 날마다 무사히 지켜내기를.


전쟁과도 같던 그 시간들을 지나,

중년이 되어서야 나는 이 병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받아들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직하겠다.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으면 발작이 일어나지 않지만,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거창한 의지도 대단한 결심도 아니다.

그저 오늘도 약을 챙겨 먹고,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

아직 이 자리에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자신에 대한 조용한 믿음.

학이 바랐던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오늘도 단단해지고 있다.

이전 03화징글징글한 팔자임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