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뒤 베란다에는 길고 조그마한 텃밭이 하나 있다.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공간이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없앨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없애는데 오히려 비용과 수고가 더 든다는 인테리어 사장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그래, 텃밭이 있어도 좋지.’
그렇게 남겨둔 작은 텃밭에 상추도 심고, 깻잎도 심고, 겨자도 심었다. 베란다에 있는 조그만 텃밭 정도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나름 ‘도시 농부’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 야외 텃밭의 한 이랑을 빌려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상추와 깻잎 겨자 같은 쌈채소뿐 아니라 감자와 수박, 해바라기까지 심었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텃밭으로 갔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잘 자란 상추와 겨자, 깻잎과 치커리를 한 아름 따서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고기를 샀다. 그래서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게는 ‘텃밭 가는 날’이 곧 ‘고기 먹는 날’이었다.
겨자의 톡 쏘는 맛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흙 속에 숨어 있던 감자를 하나씩 찾아내는 재미도 컸다. 내가 심은 작은 씨앗과 모종이 먹을 것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참 신기했다.
그렇게 반년쯤 도시 농부로 살았으니 베란다 텃밭 정도야 충분히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상추도 깻잎도 겨자도 좀처럼 잘 자라지 않았다. 채소보다 잡초가 더 씩씩했다. 잠깐 방심하면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왔고, 그 사이에서 채소들은 힘없이 시들어갔다.
그래도 이번에 다시 한번 해보기로 했다.
몇 가지 모종을 사다 심으면서 오이 한 포기도 데려왔다. 오이 옆에는 지지대도 몇 개 세워주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가느다란 덩굴손 하나가 벌써 지지대를 감고 있었다. 여리고 가느다란 것이 제 몸보다 훨씬 굵은 지지대를 야무지게 붙잡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며칠 뒤에는 노란 꼿이 피었다. 꽃 아래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조그만 오이가 달렸다.
신기하고 예뻤다.
아침이면 베란다로 가서 오이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얼마나 컸나, 새로운 꽃은 피었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푸르던 잎들은 노랗게 변했고, 쭈글쭈글해진 채 힘없이 줄기에 매달렸다. 꽃 아래 달려 있던 어린 오이들도 더 자라지 못했다.
속상했다.
이미 다른 쌈채소들은 거의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것이 오이였는데 그마저도 끝난 것 같았다.
‘이제 베란다 텃밭은 그만해야겠다.’
지지대도 곧 뽑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 침대에 앉아 있는데 베란다 쪽에서 오이 잎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무심코 바라보다가 이상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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