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산티아고로 떠난 숨고르기 청년의 순례길 #8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첫 번째 대도시인 팜플로나를 지나 두 번째 로그로뇨를 향해 가는 날이다. 발의 통증이 갈수록 심해진 탓에 남들보다 훨씬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제시간에 다음 날 숙소에 도착할 수가 없다.
그렇게 새벽 5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 숙소에서 출발했다. 7시는 되어야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는 걸 감안한다면 꽤나 일찍 출발한 셈이었다. 로스 아르코스 숙소에서 나와 긴 직선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호주 아저씨 D와 한국인 S가 나를 따라잡았다. 빠르게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이따금 같이 걷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은 순례길의 쏠쏠한 재미다. 아무리 하루 종일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해도, 혼자서만 있기에는 힘든 법이다. 그렇게 호주 아저씨와 어떻게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D는 오늘 로그로뇨가 아닌 그 직전 마을 비아나까지만 간다고 했다. 오늘 출발 마을에서 로그로뇨까지는 28km 남짓이니 짧지는 않지만 충분히 갈만한 거리였기에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리와 같은 날 출발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로그로뇨까지 가서 편하게 저녁 만찬을 즐기고 쉰다던데 왜 비아나에서 멈추는지 물었다. 그러자 D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이곳에 건강해지기 위해 왔지, 몸을 해치러 온 게 아니야."
그 말을 듣는데 무언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발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걸어가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걸을 수 있는 정도만 걷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한편 그래도 오늘 28km를 걷지 않으면 다음날 8km만 걷고 로그로뇨에서 쉬어야 하는데 하루를 날리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처음에는 호주식 발음에 race를 rice로 알아듣고는, 천천히 꾸준히 걷는 것이 밥심을 이긴다는 뜻일까 하며 호주 아저씨에게 밥심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가 이상한 눈빛을 받았다. rice가 무엇이냐고 한참을 물어보고 나서야 race라는 것을 알았다. D가 내게 건네주었던 이 문장은 아주 간단하지만 순례길 내내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빠른 걸음으로 가기보다는 느리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대로 걸어가는 것이 순례길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점점 내 속도가 뒤처지자 D는 속도를 내서 나를 앞질러갔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게 지칠 무렵 마침 D가 앞서가기에 더 이상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내심 안심했다. D가 나를 한참 앞질러가는 듯 보였지만 그래도 시야에서 사라지지는 않고 한 100미터 정도를 사이에 두고 걸었다.
한 삼십 분을 걷다 보니 첫 번째 마을 산솔이 나타났다. 마을을 지나니 건물 사이로 D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산솔과 바로 붙어있는 다음 마을 토레스 델 리오로 가는 내리막길에 다다랐다. 한 50미터 정도 되는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저 멀리 D가 내리막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커브를 트는 것이 보였다. 반갑기도 하고 생각보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더 속도를 내서 따라잡아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속도를 내어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헐렁하게 묶어놓았던 왼쪽 신발끈에 오른쪽 발이 걸리고 말았다. 무언가 턱 하고 걸렸구나, 생각이 들자마자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몸을 숙이고 아래로 무게중심을 옮겼는데, 내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몸을 숙이자마자 가방의 무게를 버티려고 앞으로 서너 발자국을 달음박질했다. 점점 무게에 몸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가슴팍을 바닥에 박고 대자로 뻗었다.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무거운 가방에 깔리니 가슴이 땅에 닿자마자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분명 50m 밖에서도 들릴 법하게 큰 소리를 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D는 내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뒤돌아오지 않았고, 혼자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재킷은 이미 찢어졌고, 팔꿈치까지 옷이 파여 오른쪽 팔은 피로 흥건했다. 일주일을 아픔을 참고 걸으면서 내가 왜 이 비싼 돈을 내고 귀한 시간을 들이면서 이 길을 걷고 있나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걷던 차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더 이상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와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괜찮은지 물어봐주길 바랐지만, 아침 이른 시간에 나왔기에 아무도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짐을 가볍게 한다고 있던 약도 다 버린 터라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반창고만 있었고 8시밖에 되지 않아 근처에 열린 약국도 없었다. 그렇게 십 분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래도 이 길은 걸어야 하니 물로 간단히 상처만 씻어내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이 넘어진 것이 전부 내가 고집을 부린 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도에 맞지 않게 걸었을 뿐만 아니라, 맞지도 않는 신발을 억지로 신고 걸었기에 넘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심지어 내가 넘어지기 직전에 호주 아저씨에게 천천히 내 속도에 맞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나는 이 순례길을 몸을 해하면서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조차 내가 왜 스스로를 해하면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왜 내가 신발을 바꾸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지 내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생각이 잠겨, 아니 자신을 원망하는 말을 속으로 잔뜩 내뱉으며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러다 내 앞에 며칠 동안 자주 마주친 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이 할아버지는 늘 환경미화원복 같이 밝은 재킷에 허리에 묶인 시장 수레를 끌고 걸었다. 산길을 걸을 때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평평한 도로가 나오면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는 분이었는데, 이 날 처음으로 어디로 사라지는지를 처음 목격했다. 바퀴 달린 수레를 끌 수 있도록 찻길로 우회해서 늘 다녔던 것이다. 찻길로 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산길로 가는 것보다 빙 돌아갈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례길을 걷고 싶으신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 순례길이 할아버지 인생의 버킷리스트였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가방을 메고서는 완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허리에 수레를 묶고 걷기로 결심했단다. 순례길을 걷는 저마다의 페이스가 있고, 저마다의 방법이 있는데 누가 이 할아버지를 보고 가방을 메지 않았으니 순례길을 제대로 걸은 것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하겠는가. 어쩌면 이 할아버지야말로 온전히 순례길을 걸어낸 순례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세 시간쯤 걷고 나니 아까 D가 오늘 머물기로 했다는 비아나에 도착했다. 도시 입구에서 약을 사고 앉아서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일 장소를 찾아 조금 더 걸어갔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성당이 보였고, 성당 앞에는 에스테야 알베르게 라운지에서 스치듯 봤던 프랑스인 J가 보였다. J는 내 또래 여자아이였는데, 마른 체형이지만 자기주장도 강하고 당당한 모습이 멋진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마침 앞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 들르고 싶었다며 나보고 간단한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카페에 들어가 J가 사준 콜라를 마시면서 약을 바르고 상처 난 이곳저곳에 반창고를 붙였다. 이 카페는 성당 바로 앞이라 모든 순례객들이 반드시 지나가는데, 미국인 친구들과 프랑스 중년부부를 비롯해서 어제 처음 말을 걸어본 이태리인 A와 I도 마주쳤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성당 앞에 멈춰 서서 사진 찍고 한숨 돌렸다. 그렇게 다들 모이자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길을 떠났다.
이 날도 역시 로그로뇨에 도착하니 내가 거의 꼴찌였다. 방에는 이미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짐을 놓는 선반에는 한 자리 빼고는 이미 차 있었다. 꽤나 빨리 걸으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발도 말을 듣지 않았다. 짐을 풀고 씻고 나오니 S와 K가 로그로뇨에 왔으니 타파스를 꼭 먹어야 한다면서 타파스 거리에 가자고 나를 불렀다. 이날 먹었던 타파스는 순례길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이 글을 보는 독자 분들 모두 꼭 한번 가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렇게 타파스 거리에 있는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안주거리를 집어먹다 보니 어느새 밤늦은 시각이 되었다. 다시 거리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려고 보니 사람들로 거리가 꽉 차있었다. 타파스 거리를 빗겨 난 거리인데도 사람이 많은 걸로 보아 무언가 축제가 있는 것 같아 인파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행진곡이 흘러나오는 곳을 따라가 보니 부활절 행사를 하는 퍼레이드였다.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과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듯한 마차와 조각상 등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는 경건한 마음으로, 누군가는 신기한 눈빛으로 그 자리에 함께했다. 숙소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생각보다 넘어진 곳이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눈을 감았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