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by우홍강

며칠 만에 윤은 학교의 씹을 거리가 되었다.


— 아버지가 전과자에 도박쟁이래.

— 어머니는 남자 끼고 놀다 집을 나갔다던데. 집도 친척한테 얹혀산다더라.

— 그래서…. 그렇게 사람을 멀리했던 거야? 꼴에?

— 잘난 척은. 외모 믿고 콧대 높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

— 남친도 그 폭력 쓴 9반 전 반장 아냐? 끼리끼리네.

— 기생오라비 끼고 노는 것까지, 딱 지 에미다.


말은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단톡방에서 자랐다. 처음엔 소곤거림이었던 것이 일주일 만에 대놓고 하는 농담이 되었다. 윤의 바카라상 서랍에서 누가 넣었는지 모를 쪽지가 나왔고, 체육복이 사라졌다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 윤이 교실에 들어서면 웃음소리가 잠깐 멎었다가, 등 뒤에서 더 크게 터졌다. 정의 구현의 주인공이라던 나는 어느새 그 이야기의 조연이 되어 있었다. 끼리끼리. 그 네 글자가 내 이름 옆에 붙어 다녔다.


나는 그 말들을 하나하나 주워들으면서도, 단 한 마디도 막지 못했다. 주먹은 사람을 넘어뜨릴 순 있어도, 입에서 입으로 번지는 것까지 넘어뜨리진 못했다. 한 번은 복도에서 그 말을 하던 남자애의 멱살을 잡았다. 그 애는 웃으며 말했다. 또 때리게? 이번엔 퇴학일걸. 나는 손을 놓았다.


무너진 건 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이라는 것을 잃었다. 늘 모든 일에 미리 대비하던 내가, 이 일 앞에서만큼은 아무런 대비도 없었다.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물어도 되는지, 무엇을 모른 척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보기 좋은 미소를 골라 끼우던 나의 서랍은 텅 비어 있었다.


윤은 점점 말이 줄었다. 도서관에도 나오지 않는 날이 늘었다. 메시지를 보내면 한참 뒤에야 짧은 답이 왔다. 응. 괜찮아. 미안. 나는 그 세 단어를 번갈아 받으며, 매번 조금씩 지쳐 갔다.


어느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윤을 보았다. 늘 앉던 구석 자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그 주변 테이블이 전부 비어 있었다. 아이들이 일부러 한 칸씩 띄워 앉은 것이었다. 윤은 그 빈자리들 한가운데서 혼자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아무렇지 않게. 나는 식판을 든 채 입구에 서 있었다. 저 빈자리 하나에 가서 앉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누군가 키득거렸다. 끼리끼리 왔네. 나는 반대편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한 번도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먹은 반찬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모든 것이 모래 같았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날부터 우리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시작했다. 사소했기에 더 위험했다. 답장이 늦었다는 것, 약속 시간을 잊었다는 것, 내가 다른 애들과 웃고 있었다는 것. 별것 아닌 말끝이 자꾸만 날을 세웠다.


그날은 비가 왔다. 여름의 마지막 비였다. 우리는 학교 뒤편 자전거 보관소 지붕 아래 서 있었다. 빗소리가 양철 지붕을 두드렸다. 윤은 또 내일 도서관에 못 나온다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왜. 또 무슨 일 있어?"


윤이 나를 보았다. 나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결국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나도…… 이젠 좀 지쳐. 내가 언제까지 네 일에 휘말려야 하는데."


내뱉는 순간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빗소리가 갑자기 아주 크게 들렸다. 윤은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 끝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던, 바로 그 웃음으로.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내 이유까지 사랑할 수 있다며. 네가 그랬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변명도, 사과도. 내가 했던 가장 멋진 말이, 그날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 돌아왔다.


윤은 우산도 펴지 않고 비 속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내 우산을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쫓아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애가 좋아한다는 걸 지켜 주는 게 사랑이라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지쳐서 서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날 밤 나는 젖은 교복을 벗지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메시지 창을 열었다. 미안해. 지웠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 지웠다. 내일 얘기하자. 지웠다. 커서만 깜빡였다. 무슨 말을 써도, 그 애가 빗속으로 걸어 나가던 뒷모습을 덮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휘야, 밥 안 먹니."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발소리가 한참 문 앞에 머물다가, 부엌 쪽으로 멀어졌다. 나는 휴대폰 화면이 꺼질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까만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보기 좋은 미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 날부터 윤은 나를 보지 않았다. 창가 세 번째 줄, 오전 햇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그 자리에 앉아, 언제나처럼 앞만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기 위해서.


얼마 뒤, 나는 전학을 결정했다. 더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한 건 나 하나뿐이었다. 진실은 단순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윤에게서, 소문에게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끝내 감당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서.


마지막 날, 나는 일부러 아침 일찍 교실에 가서 사물함을 비웠다. 아무도 없는 교실이었다. 창가 세 번째 줄 바카라상 위에 햇빛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오래 보았다. 뭐라도 남기고 싶었다. 쪽지 한 장, 문제집 한 권. 결국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남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길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화해는 하지 않았다. 끝끝내,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