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영성이 동시에 찾은 정답

나라는 착각과 순수의식

by임풍

생각은 시시각각 흔들리고,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또는 전신마취를 하면, 나라는 자아감마저 깨끗이 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내가 늘 여기에 있다고 느끼고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 나라는 정체성조차 마음이 순간순간 만들어낸 임시 구축물이라면,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 깊은 의문을 탐구하기 위해, 현대 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밝혀낸 마음의 실체, 그리고 나아가 조셉 배너(Joseph Benner)가 말한 비개인적 삶(The Impersonal Life)과 영성적 순수의식과의 관련성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 살펴본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마음은 물질이 아니라 연산하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마음을 뇌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혼이나 고정된 장치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마음은 멈춰있는 실체가 아니라, 뇌라는 신체 기관이 끊임없이 수행하는 동적 연산 과정(Dynamic Calculation Process)이다. 우리의 뇌는 바깥세상의 빛, 소리, 피부 감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이를 과거의 기억과 끊임없이 비교한다. 이 거대한 정보의 처리 과정 속에서 부산물처럼 피어오르는 결과물이 바로 생각, 기분, 그리고 나라는 정체성이라고 한다. 즉, 마음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뇌가 신체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흐르는 정보의 패턴 그 자체라는 관점이다.

▪︎더욱 특이한 점은 예측 인지 이론에 의하면 뇌가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는 사실이다. 뇌가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우리는 흔히 "외부 자극을 카메라처럼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의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인 예측 인지(Predictive Processing) 이론은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한다. 뇌는 두꺼운 두개골이라는 어두운 상자 안에 갇혀 있다. 따라서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파편적인 신호만으로 외부 세상을 직접 볼 수 없다. 대신 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먼저 예측(Prediction) 하여 내부적인 시뮬레이션, 즉 환각을 만든다.
- 예측 오차(Prediction Error)의 수정: 뇌가 먼저 만든 예측 모델과 실제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신호 사이에 차이가 생길 때만, 뇌는 그 차이(오차)를 받아들여 시뮬레이션을 수정한다.
- 그렇다면 현실이란 무엇인가: 결국 우리가 느끼는 현재의 현실은 외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뇌가 만든 내부 예측과 실제 감각 오차가 타협하여 만든 최선의 가상현실이다. 따라서 마음이 만들어내는 생각과 감정, 심지어 외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까지도 모두 이 예측 시스템의 가동 결과물이다.

▪︎뇌와 마음은 자아를 조립하는 스토리텔링 공장이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존재한다"라는 자아감과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은 어디에서 올까? 과학자들은 기능적 뇌영상(fMRI) 기술을 통해 뇌 내부의 거대한 신경망 네트워크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를 발견했다. DMN은 우리가 아무런 외부 작업에 집중하지 않고 멍하게 있거나,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활발하게 가동되는 뇌 부위들의 연합체다. 이는 끊임없이 자아 서사(Narrative Self)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기억 조각과 감정, 예측 모델들을 하나로 엮어 "이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연속적인 자아감을 만들어낸다.
- 특이하게도 무언가에 극도로 몰입하거나, 특정 명상 및 전신마취 같은 뇌 상태에 들어갈 때 DMN의 활동량은 급격히 떨어진다. 바로 이때, 뇌가 매 순간 조립하던 자아라는 느낌의 스위치가 꺼지면서 내가 사라진 듯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따라서 나라는 느낌인 자아는 언제나 그 자리에 단단하게 존재하는 알갱이가 아니라, DMN이라는 뇌의 엔진이 부지런히 돌려 만드는 일종의 정교한 시뮬레이션 모델이며 항상 업데이트 된다.

▪︎현대 뇌과학은 마음과 의식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한다. 우선 마음(Mind)은 무의식적인 예측 연산, 감정 조절, 기억 저장, 자아 구축 알고리즘(DMN)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정보 처리 시스템이다. 이에 비해 의식(Consciousness)은 마음이 처리하는 거대한 데이터 중에서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아주 작은 일부가 생생한 경험으로 변환되는 무대이자 조명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의식은 사람이 기울이는 관심을 스포트라이트처럼 쫓아다닌다. DMN의 가동이 줄어들어 자아라는 개인적 콘텐츠가 무대 위에서 잠시 내려가도, 그 무대 자체인 의식(내가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은 꺼지지 않고 유지된다. 이처럼 생각과 개인적 자아감은 마음이라는 공장이 빚어내는 순간순간의 소품들이며, 의식은 그 소품들이 올려지는 경험의 현장이다.

▪︎경험의 무대로서의 의식 개념과 영성가들이 말하는 순수의식(Pure Consciousness)의 유사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 말하는 경험의 무대로서의 의식은 동서양 영성 전통에서 말하는 순수의식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부합한다. 연극 무대 위에는 비극도, 희극도, 괴물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연극이 끝난 후에도 무대 자체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이처럼 마음이 조립해낸 소품들(불안, 기쁨, 자아감, 생각)이 무대 위에서 아무리 흔들려도,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무대 그 자체, 즉 어떠한 대상도 담기지 않은 텅 비었으나 생생하게 깨어있는 의식이 바로 순수의식이다.
- 마음이 만들어낸 생각과 자아감은 의식의 무대에 채워지는 내용물에 불과하다. 영성가들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내용물(소품)의 조합에 불과한 에고에 몰입하는 대신, 그 내용물이 펼쳐지는 바탕(무대) 그 자체로 정체성을 전환하는 일이다.
- 뇌의 연산 상태가 변함에 따라 관찰되는 내용물은 계속 달라지지만, 경험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인 순수의식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현존한다.

▪︎또한 과학이 말하는 자아감과 조셉 배너의 비개인적 삶(Impersonal Life)이 갖는 함의의 유사성을 알 필요가 있다. 그의 명저 <비개인적 삶(The Impersonal Life)>에서 강조한 핵심 철학과 과학이 보는 자아감 개념이 완벽하게 연결된다. 배너는 개별적인 이름, 신분, 과거의 상처로 엮인 개인적 에고(Personal Self)는 진짜 나(I AM)가 아니며, 단지 마음이 만든 가짜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비개인적(Impersonal) 삶이란, 에고라는 왜곡된 렌즈를 내려놓고 무대 위의 소품이 아닌 순수의식(I AM) 그 자체로 살아가는 태도를 뜻한다.
- 이는 가상 스토리인 에고의 해체를 의미한다. DMN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내 이름, 내 신세, 내 걱정이라는 개인적 자아(Personal Self)에 대한 서사를 멈출 때, 비로소 배너가 말한 비개인적 상태(Impersonal State)에 진입한다.
- 비개인적 의식으로의 전환이란 뇌가 짜내는 제한된 시뮬레이션 소품들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그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근원적 무대이자 경험 그 자체인 순수의식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뇌과학이 "에고는 뇌의 구축물일 뿐"이라고 규정한 반면, 조셉 배너는 "그러므로 그 에고라는 소품을 넘어선 비개인적 원천으로 돌아가라"라는 영성적 통찰을 제시한다.

▪︎마음이란 뇌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정보, 예측, 그리고 자아라는 스토리를 엮어내는 동적 시스템 전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상 나라고 부르는 단단한 정체성이나 개인적 에고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뇌의 예측 시스템과 DMN이 순간순간 엮어내는 정교한 환상과 비슷하다. 조셉 배너의 말처럼 이 개인적 정체성의 허상을 꿰뚫어 보고, 그 변화무쌍한 소품들을 가만히 비추고 있는 주관적 경험의 무대(비개인적 순수의식, I AM)로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현대 과학과 고대 영성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의식(Consciousness)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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