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우주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30억 개의 문자가 인간이 되기까지

by임풍

아무리 지워버리려 해도 끝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세포 속 30억 개의 문자가 인간이 되는 과정에 대한 생각이다. 자동차는 사람이 만든다. 수많은 부품을 각각 제작하고, 정해진 위치에 하나씩 조립한다. 엔진과 변속기와 바퀴와 전자 장치를 결합하면 마침내 자동차라는 하나의 완성된 물체가 된다. 자동차가 스스로 부품을 만들어 자신을 조립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생명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작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의 세포가 된다. 그 순간부터 그 세포는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라 분열하고,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를 만들어내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어느 곳에서는 조직을 만들고 어느 곳에서는 혈관과 신경을 만든다. 어느 세포는 살아남고 어느 세포는 스스로 죽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계속되면서 하나의 인간이라는 형체가 나타난다.

겉으로만 보면 놀랍도록 단순하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한 게놈에는 약 30억 개의 염기가 있다. A, T, G, C라는 네 종류의 분자가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이 서열은 생명체의 유지와 발생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물론 DNA는 자동차 설계도와 같은 완성된 도면이 아니다. DNA의 염기서열만 읽는다고 해서 인간이라는 최종 형상이 그대로 그림처럼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유전자의 발현에는 다른 유전자와의 관계, 세포 내부의 상태, 세포 사이의 신호, 화학적 환경, 물리적 힘, 발생 과정의 시간적 순서가 함께 작용한다. 실제 배아 조직에서는 외부에서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세포와 조직의 상호작용을 통해 질서가 형성되는 자기 조직화 현상도 관찰된다.

그러므로 더욱 이상하다. 자동차는 부품을 조립해야 완성되지만, 생명은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부품을 만들고, 스스로 배치하고, 스스로 고치고, 필요 없는 부품을 스스로 제거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도대체 이 스스로란 무엇인가? 현대 과학은 그 과정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DNA가 복제되고, RNA가 만들어지고, 단백질이 합성되고, 세포 안의 신호전달 체계가 작동하고,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교환한다.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 발현의 시간과 위치가 달라지고, 그 결과 서로 다른 세포와 조직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각각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통일된 현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30억 개의 문자를 읽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30억 개의 문자가 언제 어떤 세포에서 읽혀야 하는지, 서로 다른 세포들이 어떻게 그 정보를 나누어 읽어 하나의 몸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하나의 자기 유지적 존재로 이어지는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여기에서 인간의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누가 이것을 시작했는가? 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우주의 근본 법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자연선택과 자기 조직화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물리적 원리가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이름을 붙이든 한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파인만이 강조한 것처럼 특정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자연이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해서 자연이 어떻게 이런 질서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정보라는 말을 붙였다고 해서 정보가 어떻게 물질의 움직임을 조직하는지 모두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물질에 무엇인가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 물질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되었을 때 나타나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현상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만들어진 뒤에도 이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완성된 조각상이 아니다. 세포는 계속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조직은 손상되고 복구된다. 단백질은 합성되고 분해된다. 오래된 세포는 제거되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모든 세포가 같은 방식으로 교체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세포는 매우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거대한 자기 유지 체계도 무너진다.

한편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을 보호하는 구조이며, 많은 체세포에서는 세포가 분열할 때 점차 짧아진다. 일정 수준에 이르면 세포의 분열 능력과 노화, 사멸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화와 죽음이 텔로미어 하나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DNA 손상, 세포 노화, 줄기세포 기능 저하, 단백질 항상성의 변화 등 수많은 과정이 서로 얽힌 결과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동차보다 훨씬 이상하다. 자동차는 부품이 닳으면 사람이 교체한다. 인간은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교체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교체 자체가 충분히 유지되지 못한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른다.

물리학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기묘함이 나타난다. 존 휠러는 모든 전자가 사실 하나의 전자일 수 있다는 놀라운 사고실험을 생각했다. 하나의 전자가 시공간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며 수많은 전자와 양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생각이었다. 리처드 파인먼과의 유명한 대화에서 나온 이 아이디어는 이후 'One-Electron Universe'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물론 현대 물리학은 전자를 우주를 엄청난 속도로 돌아다니는 하나의 작은 구슬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양자장론에서는 전자를 보다 근본적인 전자장의 양자적 들뜸으로 기술한다.

그럼에도 이 사고실험은 묘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하나의 독립된 물체인가? 내 몸을 이루는 입자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나아가 우리는 우주와 분리된 존재인가, 아니면 우주의 물질과 법칙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된 하나의 국소적인 패턴에 불과한가? 이런 질문 앞에서는 인간의 언어 자체가 작아진다.

시간조차 그렇다. 우리는 흔히 우주 전체에 동일하게 흐르는 하나의 절대적인 시간을 상상하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관측자의 운동과 중력장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시간의 바깥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물질의 상태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예를 들어 수정란과 성인이 서로 다른 이유는 어떤 절대적인 시계가 두 존재 사이에 시간을 흘려보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사이에 수없이 많은 물리적, 화학적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 세포가 둘이 되고, 둘이 다시 수많은 세포가 되고, 세포들이 서로 다른 상태를 갖고, 조직을 이루고, 신경계가 만들어지고, 기억이 축적된다. 시간은 그 변화를 담는 하나의 차원이지만, 생명은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난 변화의 거대한 조직이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이상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우주가 수십억 년 동안 만들어낸 물질의 한 형태다. 별에서 만들어진 원소들이 모이고, 행성과 화학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서 생명이 시작되고, 엄청나게 긴 진화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스스로의 기원을 질문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우리 몸속에 광물질인 칼슘, 마그네슘, 철분, 인 등이 부족하면, 심각한 병이 생긴다.

그런데 이토록 귀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그 존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서로 빼앗는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작은 차이를 이유로 싸운다. 심지어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에게 이런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을 돌보고, 낯선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예술을 만들고, 진리를 탐구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숲을 보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에게 이 두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주가 이렇게 긴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존재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자신의 존재를 성찰할 수 있다면, 그 존재에게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반드시 종교적인 의미에서 성스러움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이 전체 현실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만들어낸 우주에 대해 최소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요구되는 가장 최소한의 태도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정말 이상한 도자기와 비슷하다. 우리는 수십억 년의 우주적 역사와 수십억 개의 DNA 염기,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분열과 단백질 합성, 진화와 발생과 생존의 역사를 통과하여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토록 복잡한 존재가 때때로 자신의 삶을 오직 돈과 권력과 경쟁과 허영에 소비한다. 그것은 마치 엄청난 가격을 들여 만든 정교한 도자기를 개밥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이 비유에도 한계가 있다. 도자기는 자신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인간은 묻는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모든 과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존재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마 인간이 우주적으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가장 강한 존재이기 때문도, 가장 오래 사는 존재이기 때문도 아닐 것이다. 자신을 만들어낸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생명의 궁극적인 설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설계자가 존재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물질과 정보와 의식 사이의 가장 깊은 관계도 알지 못한다. 5차원에서 정보가 내려와 3차원 인간이 되었다는 주장 역시 현재 과학으로 확립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의 끝에는 결국 하나의 더 근본적인 물음이 남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는 인간도, 인공지능도, 양자컴퓨터도, 우리가 가진 30억 개의 문자도 잠시 말을 멈추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다. 인간의 위대함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주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알면서도 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임풍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인간 의식 탐구, 21세기 대응법, 몸과 맘 균형, 유튜브 채널: 아래 웹싸이트(URL) 클릭 연결, 저서: 21세기 인생 해석, 생각하면서 걸어가기,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11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