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탄생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배가 쓸려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것은 수면 아래 깊이 내린 무거운 닻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뜻하지 않은 고난과 폭풍우가 삶을 흔들 때, 우리는 자신을 내어맡길 수 있는 영혼의 앵커링 포인트(Anchoring Point)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많은 이들이 신앙의 대상 앞에 자신을 낮추며 위안을 얻고,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모나 가족, 따뜻한 공동체, 혹은 자신이 지켜온 철학과 가치관 속에서 삶의 닻을 내린다.
헬렌 켈러는 특정 믿음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그 믿음이 한 인간에게 진정한 위안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의학계의 플라세보 효과 역시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자신이 치유될 것이라 믿을 때 실제로 몸이 회복되는 반면, 불신과 불안에 사로잡히면 있던 병도 악화되는 노세보 효과가 나타난다. 최근 각광받는 후성유전학은 이러한 마음의 역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타고난 유전자는 변하지 않더라도, 환경과 마음의 변화가 신호가 되어 유전자의 발현 스위치를 켜고 끈다. 긍정적인 확신과 평안함은 세포에 이로운 호르몬을 분비시켜 질병 유전자의 작동을 억제하고 면역계를 활성화한다.
문제는 이토록 강력한 믿음을 인간이 스스로 쉽게 가지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믿음에는 단계와 성장이 존재한다. 보통의 신앙에서는 '먼저 믿어야 현실이 바뀐다'라고 말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현실이 먼저 바뀌어야 믿음이 생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삶이 곤궁하고, 몸이 아프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조건 없는 선험적 믿음을 먼저 품을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이 우주를 창조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운용 중인 거대한 지성과, 그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한 절실한 신비감을 깨닫는 데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의 절대자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의식하지 않는 동안 심장이 24시간 쉬지 않고 뛰고 있고, 폐가 자발적으로 숨을 쉬며 나를 살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경탄 속에서 굳어있던 믿음의 싹이 피어난다. 비록 지금의 삶이 힘들고 통증이 지속될지라도, 그 이면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 사랑과 우주적 질서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접점이 바로 무조건적인 확신이 탄생하는 경계선이다. 이 거룩한 인식의 과정에 눈앞의 현실은 더 이상 조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당장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관계가 개선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의 오감을 초월한 우주적 생명력이 내 온 세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언젠가 부엌에서 팔에 작은 화상을 입었을 때, 시간이 흐르며 염증이 가라앉고 새 살이 올라와 완벽하게 피부가 재생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마치 수백만 명의 미세한 인부들이 쉬지 않고 파손된 도로를 수리하고 있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화상이 치유되어서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런 거대하고 완벽한 돌봄을 주는 힘과 존재가 내 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음에 이르게 했다. 거대한 지성은 특정한 때에만 찾아오는 외부의 손길이 아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그 첫 순간부터 한시도 빠짐없이 내 곁을 지켜온 내재적 존재다. 이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위대한 힘, 하나의 지성이 존재한다. 그 힘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나를 구성하는 30조 개의 세포와 38조 개에 달하는 마이크로바이옴 미생물을 완벽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 경이로운 생명의 활동을 자각할 때, 나를 지키고 언젠가 완성으로 이끌어줄 거대한 힘에 대한 확신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다. 현실이 바뀌어 믿는 것이 아니다. 내 존재의 깊은 신비를 자각함으로써 믿음이 먼저 뿌리내릴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라는 현실 또한 새로운 질과 차원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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