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가공을 덜어낸 관계

함께 있음의 무게에 대하여

by임풍

숲속의 침팬지 두 마리가 곁에 앉아 있다. 그들에게는 인간처럼 정교한 문법이나 화려한 수식어가 없다. 서운함을 고백하는 뉘앙스도, 관계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세련된 사과도 없다. 때로는 영역이나 작은 충돌로 으르렁거리지만, 이내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털을 골라준다. 그 손길 하나에 소통의 모든 본질이 담겨 있다.

반면 인간의 관계는 정교한 언어 덕분에 풍요로워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언어 때문에 더 자주 상처받고 삐걱거린다. 현대인은 미디어라는 고도로 기획된 환상 속에서 산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갈등의 순간에 시의적절한 명대사로 상대의 마음을 녹이고 오해를 풀어낸다. 그러나 그 문장들은 작가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고심해 깎아낸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정작 그 대사를 쓴 작가조차 일상에서는 서툴고 투박한 말을 내뱉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화면 속 연출된 언행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왜 내 동반자는 저렇게 성숙하게 말하지 못할까?" "왜 저런 위로의 표현 하나 건네지 못할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기획된 환상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있다. 마치 <논어>나 <맹자>의 고상한 성찰을 당장 현실의 소소한 대화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처럼, 드라마 속 명대사를 현실의 배우자나 친구에게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어긋난 프레임이다. 상대는 단지 자신의 세계관과 언어 습관 안에서 최선의 표현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기대치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나에게는 그 말이 무성의함으로, 혹은 나를 향한 상처로 다가온다. 언어는 내면을 전달하는 도구이지만, 각자의 경험과 맥락에 따라 심각하게 왜곡되는 특성을 지닌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멋진 말로 사과해 주길 바라는 갈등 해결 방식은 끊임없이 상대를 평가하게 만든다.

우리가 자주 겪는 관계의 피로함은 미디어 속 기획된 관계, 현실의 일상적 관계, 그리고 영장류의 본능적 관계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소통의 방식: 미디어가 극적이고 완벽한 대사로 마음을 전한다면, 현실의 언어는 투박해서 오해를 사기 쉽다. 반면 영장류는 체온과 시선, 털을 골라주는 손길만으로 마음을 전한다. 언어가 없기에 오해도 없다.
▪︎갈등의 해결: 영화 속 갈등은 감동적인 고백으로 즉시 해결되지만, 현실은 긴 시간 동안 서툰 조율을 거쳐야 한다. 반면 영장류는 사과 대신 그저 다시 곁에 머물며 체온을 나누는 것으로 갈등을 자연스럽게 넘긴다.
▪︎관계의 기대: 우리는 상대가 나를 완벽히 이해하고 성숙하게 표현해 주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일 뿐이다. 영장류처럼 그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 자체에 만족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기대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대에게서 미디어 속 화려한 대사를 요구하는 대신 침팬지나 고릴라 등 여타 영장류처럼 함께 곁에 있어 주는 존재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번지르르한 언어를 거두고 곁을 나누는 일을 배울 필요가 있다. 행복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의 언행을 바꾸려는 노력이 아니라, 내 안의 과도한 기대치를 내려놓는 일이다. 화려한 말과 완벽한 표현으로 가득 찬 관계가 아니어도 괜찮다. 여타 영장류들이 털을 골라 이를 잡아주듯, 인간에게도 번지르르한 수식어 없이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시간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

동시에 표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음을 받아들일 때, 불필요한 서운함이 사라진다. 이는 언어 너머의 존재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준다. 서툴게 건넨 말 한마디 뒤에 있는 상대의 고유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즉 묵묵한 동행에 감사하는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산바카라을 하고, 체온을 나눈다는 사실 자체의 무게를 되새긴다. 관계의 갈등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미디어 속 주인공으로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상대가 나와 다른 하나의 독립된 세계임을 인정하고, 말이라는 포장지를 한 겹 벗겨낸 뒤 '함께 있음' 그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오해에서 벗어나 깊은 평온으로 나아가는 관계의 내려놓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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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의식 탐구, 21세기 대응법, 몸과 맘 균형, 유튜브 채널: 아래 웹싸이트(URL) 클릭 연결, 저서: 21세기 인생 해석, 생각하면서 걸어가기,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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