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본질 이해

by임풍

전도서의 저자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고 말한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 구절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가면서 삶의 여러 사건이 차례로 일어난다는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는 인간 존재와 세계의 보다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 삶은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 만남과 이별, 획득과 상실, 사랑과 미움, 희망과 절망은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교차한다. 인간은 어느 한쪽에 영원히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힘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다.

인간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하나의 일관된 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것을 믿으며, 이런 가치를 추구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실제의 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의 마음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아도 서로 다른 욕망과 감정, 믿음과 의심, 사랑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삶은 하나의 극이 아니라 양극 사이의 운동이다. 헤르메티시즘에서는 우주의 여러 현상을 서로 대립하는 극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극성이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단순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 위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다. 뜨거움과 차가움, 밝음과 어둠, 긴장과 이완처럼 삶의 현상은 어느 하나의 상태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리듬 역시 이와 관련된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기쁨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상실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면서 동시에 상처받을 것을 걱정한다. 성공했을 때조차 실패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아주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붙잡는다. 인간의 마음은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들의 교차점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든다”라는 유명한 구절 역시 이러한 인간 인식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사건이 인간에게 의미를 갖는 방식은 사건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그때 다양한 잣대에 따라 경험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기쁨과 고통, 선과 악, 희망과 절망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이것이 선과 악의 모든 구별이 단순한 착각이라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과 가치체계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외부의 사건과 내부의 해석이 만나는 점에서 형성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의 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인간의 내면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하나의 통일된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내가 나타난다. 어떤 순간에는 용감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이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위축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분노할 수 있고, 어떤 신념을 굳게 믿으면서도 동시에 그 신념에 대한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어떤 일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인가 어쩌면 둘 다 나일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서로 다른 욕망과 기억, 본능과 가치관, 상처와 기대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수많은 내면의 목소리가 잠정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단면이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오래도록 인간을 매혹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킬과 하이드는 단순히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 안에 서로 모순되는 충동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묘사로 읽을 수 있다.

칼 융의 심리학 역시 인간의 의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단 무의식과 원형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인간을 하나의 단순한 단위로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나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이다. 나는 통일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아의 내부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가능성이 공존한다.

완전함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싸우게 된다. 평소에 우리는 완전한 평화를 원한다. 완전한 확신을 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원한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 의심이 없는 믿음, 흔들림이 없는 자아를 꿈꾼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려는 욕망 자체가 오히려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낸다. 평화롭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나는 왜 평화롭지 못한가?”라고 자신을 비난한다. 믿음이 흔들리면 “내 믿음은 왜 이렇게 약한가?”라고 자바카라한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는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또 다른 결핍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본래 변화하고 흔들리는 것이라면,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자연의 리듬에 저항하는 일이다. 100%의 행복, 100%의 평화, 100%의 확신이라는 것은 현실의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긴장과 불안을 포함한다. 기쁨 속에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사랑 속에는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믿음 속에는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 심지어 극심한 절망의 순간에도 인간 전체가 완전히 절망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우리는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햇빛이 좋으면 잠시 그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인다. 모든 것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삶을 향한 작은 충동이 계속 작동한다. 이것은 인간이 실제로 모순적인 존재라는 증거이다. 그리고 바로 그 모순성이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인간은 모순을 제거하는 존재가 아니라 품어내는 존재이다. 우리는 성숙을 흔히 내면의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모든 욕망과 감정을 하나의 가치체계 안에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은 모든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모순을 견딜 수 있는 힘이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화가 날 수 있다. 어떤 일을 원하면서도 그것이 두려울 수 있다.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심할 수 있다.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이 무바카라임하거나 일관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힘을 정확히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힘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내 안에 분노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분노가 곧 나라고 믿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두려움이 나의 전부라고 믿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의심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의심이 있다는 이유로 나의 믿음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문제다. 감정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감정 그 자체가 반드시 나의 본질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펜듈럼을 멈추려 하지 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펜듈럼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을 바라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기쁨이 찾아오면 기쁨을 경험하되 그것을 영원히 붙잡으려 하지 않고,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을 충분히 경험하되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 믿음이 강해지는 순간에는 그 믿음을 소중히 여기되 자신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의심이 찾아오는 순간에는 의심을 허용하되 그것이 자신의 모든 믿음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무관심이나 냉소가 아니다. 오히려 삶에 더 깊이 참여하면서도 삶의 한 상태에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다.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생각으로 바라보고,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감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화가 났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안에 지금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고 바라볼 수 있는 순간, 우리는 감정과 자신 사이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에서 자유가 시작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완전함이 아니라 통합에 있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빛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림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인간은 믿음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도 아니다. 의심도 가지고 있다.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도 아니다. 미움과 질투와 분노도 경험한다. 강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연약한 존재이고, 이성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본능적 존재이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익숙한 것에 묶이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이러한 양면성을 제거하여 완벽하게 하나의 인간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내면의 지체들을 억압하여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넓은 의식 안에서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면 통합의 의미이다. 통합은 모든 것이 같아지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다름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전체 안에 공존할 수 있는 상태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음만 연주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음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삶은 하나의 직선이 아니라 하나의 호흡이다. 전도서의 지혜를 다시 생각해 본다. 태어남과 죽음, 심음과 거둠, 울음과 웃음, 사랑과 미움이 모두 때를 가진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어느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삶은 직선이 아니라 복합적인 리듬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얻고 잃으며, 만나고 헤어지고, 희망하고 절망하며, 믿고 의심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서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삶의 지혜는 좋은 것만을 선택하여 나쁜 것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삶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는 데 있다.

기쁨이 왔을 때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슬픔이 왔을 때 그것 역시 지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할 때 사랑에 온전히 참여하면서도 그 사랑이 변화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상실했을 때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면서도 삶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삶과 싸우는 대신 삶의 리듬을 탈 수 있게 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완벽한 평형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그 흔들림 전체를 하나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다.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나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과 모순이 만나는 존재이며, 삶은 그 다양한 힘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밀고 당기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펜듈럼을 멈추는 데 있지 않다. 인생의 펜듈럼이 움직이고 있음을 아는 데 있다. 두려움이 와도 “나는 두려움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기쁨이 와도 “나는 기쁨이다”라고 붙잡지 않으며, 믿음과 의심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그 어느 하나에 나의 전 존재를 맡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 물러나 내면의 움직임 전체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한다. 삶에는 오고 감이 있고, 흥함과 쇠함이 있으며, 만남과 이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호흡 안에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일 것이다. 나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고정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변하며, 모순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완전함이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의 순간, 우리는 삶을 통제하려는 사람에서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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