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가

by임풍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니체의 명제, 아모르파티(Amor Fati)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매혹적인 삶의 태도로 제시되어 왔다. 주어진 삶을 거부하지 않고, 필연적인 것을 긍정하며, 심지어 그것을 사랑하는 삶의 태도이다. 이 문장은 분명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이 글은 니체의 사상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학이 주는 위안이 현실에서 삶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측면을 숙고해 보는 데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굴레 속에서 묵묵히 삶을 견뎌내는 한 인간의 눈으로 이 문장을 다시 바라보면, 그 찬란한 구호 뒤에 감춰진 거대한 역설이 느껴진다. 삶은 결코 명쾌한 철학적 언어로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질서 있는 직물 조각이 아니다. 오히려 삶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무거운 굴레와 유사하다. 인간은 그 굴레를 벗어나기보다,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니체의 말에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는 역설의 문제가 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운명과 사랑이라는 두 개념의 관계다. 운명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묘한 역설을 품게 된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운명이 정말 운명이라면 인간에게 그것을 사랑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애초에 주어져 있는가? 사랑하기와 사랑하지 않기라는 두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운명의 필연성이라는 개념과 상충하는 관계에 놓인다.

물론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를 단순한 의지적 선택의 문제로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닥쳐오는 사건들은 대부분 선택 이전에 이미 발생한다. 사고, 질병, 상실, 경제적 곤란, 타인의 배신, 슬롯적 부조리처럼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인간은 그 모든 사건을 선택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닥쳐오는 외부의 자극과 사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갈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것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거센 파도 앞에서 바다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파도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그 파도를 사랑할지 말지도 언제나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모르파티는 삶에 대한 강력한 태도를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사랑은 과연 여전히 사랑인가의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는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의 추상성에 있다.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 가운데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모호한 단어 중 하나다. 사랑은 애착이 될 수도 있고, 집착이 될 수도 있으며, 헌신이 될 수도 있고, 체념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준다는 말로 포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미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을 삶의 궁극적인 태도로 제시할 경우, 자칫하면 어떤 현실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체념을 긍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을 운명에 대한 수용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 순간 철학은 현실을 직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언어가 될 위험이 있다.

특히 고통과 불행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단순히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원인을 분석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그것은 때때로 고통을 고통으로 인정하지 않기 위한 관념적 도피가 될 수 있다.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고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가 오히려 이러한 구별을 무력화한다면, 그 사랑은 삶을 긍정하는 힘이 아니라 현실을 은폐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내면의 거울’이라는 전통적 철학의 관점이 주는 영향력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주는 정신이다"라는 고대 헤르메티시즘이나 20세기 초 신사고에서는 이른바 현실은 내면 의식이 만들어낸 표상을 거울처럼 비춰낸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이 관점에서는 외부 현실이 어느 정도 내면의 의식과 믿음, 감정의 반영이라고 본다. 따라서 외부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종류의 문제를 품고 있다. 만약 모든 외적 현상이 내면 의식의 투영이라면, 인간에게 독립적인 힘을 가진 외부 현실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운명 역시 결국 개인의 내면이 만들어낸 결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실제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외부 세계는 철학의 주장대로 그렇게 간단히 느껴지지 않는다. 생계의 어려움은 단순히 내 의식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우연한 사고나 타인의 폭력, 슬롯적 불평등과 같은 사건 역시 개인의 내면 상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모든 현실을 의식의 투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때로 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바카라임을 떠넘긴다. 네가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네 의식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설명은 현실 슬롯의 구조적이고 우연적인 폭력을 개인의 내면 문제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철학적 명제 역시 또 다른 형이상학적 프레임일 뿐이다.

삶은 어느 하나의 철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모르파티도 신사고의 거울 현실 관점도 삶 전체를 설명해 주는 최종적인 해답은 아니다. 하나는 외부에서 주어진 필연을 긍정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외부 현실을 내면의 반영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 어느 하나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삶에는 내가 선택한 것도 있고 선택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도 있고, 단순한 우연으로 발생한 사건도 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도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도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철학적 프레임은 삶의 한 단면만을 보여준다. 아무리 정교한 철학이라도 삶의 100퍼센트를 담아낼 수는 없다.

삶은 선형적인 진보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언제나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높은 정신적 단계에 도달하며, 마침내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은 때때로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맴도는 거대한 쳇바퀴와 비슷하다.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서 이 점을 간파했다.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다시 오고,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되돌아오며, 인간은 같은 종류의 고통과 피로를 다시 견뎌낸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반복을 견뎌낸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본질일 수 있다. 실재하는 삶은 철학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 인간은 우선 하나의 유기체다. 먹고, 자고, 병들고, 늙고, 상처받는다. 정신은 언제나 육체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삶의 무게는 때때로 어떤 철학적 통찰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압도적이다. 그렇다면 굳이 운명을 사랑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긍정해야 하는가. 내면을 정복하고 현실을 창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날에는 삶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운명을 긍정하지 못해도 된다.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거창한 철학적 수식어로 운명을 찬미하지 않더라도, 내면의 정복을 선언하지 않더라도, 이 맴도는 삶의 무게를 매일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실체일 수 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삶을 사랑할 수 없는 순간에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모르파티가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조금 덜 아름답고 조금 더 현실적인 문장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운명을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을 살아낸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임풍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인간 의식 탐구, 21세기 대응법, 몸과 맘 균형, 유튜브 채널: 아래 웹싸이트(URL) 클릭 연결, 저서: 21세기 인생 해석, 생각하면서 걸어가기,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11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