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맛보고 싶어 한다. 진짜로 산다는 의미는 몸을 먼저 움직인다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집착과 끊이지 않는 머릿속 관념의 소음에서 벗어나서, 지금 눈앞의 세계를 향해 직접 몸을 던지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실용주의 심리학에서도 진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 근본적인 실행에 있다.
생각은 제한이 없어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 위를 표류한다. 그리고 생각의 주제는 수시로 바뀐다. 반면, 인간의 몸과 행동은 철저히 지금, 여기라는 하나의 물리적 시공간에 귀속된다. 우리의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매여 수많은 계산과 예측을 거듭할 때, 삶은 점점 아득해지고 실행력은 마비된다.
과학적 법칙처럼 명확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타인과의 관계나 인생의 중대한 선택처럼 아무리 깊이 고민해도 답이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처럼 생각의 과잉에 사로잡혀 완벽한 통제와 절대적 진리의 때를 기다리는 태도는 결국 삶이라는 진흙탕에 발을 디디지 않으려는 회피일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는 관념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온 고유한 경험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같은 사안이라도 느끼는 바가 전부 다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는 머릿속의 관념적 정답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삶을 통과하며 획득하는 나만의 상대적 진리다. 이러한 상대적 진리도 내가 먼저 행동해야만 감정과 생각이 뒤따라오며 나의 진리 체계가 형성된다. 물론 모든 것을 무조건 행동부터 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선 어떤 상황에 처하면, 내면의 의지적 선택이 필요하고, 그런 선택이 60% 정도의 확신만 준다면 행동을 즉각 개시한다.
한편, 종교적 신념이 누군가에게는 미신으로 보일지라도, 사형수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을 잠재우고 평화롭게 형장으로 걸어가게 만드는 거대한 심리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처럼 진리의 가치는 추상적 논리가 아닌 그 믿음과 행동이 삶에 실제로 일으키는 유용한 변화에서 증명된다. 윌리엄 제임스가 강조했듯이 인간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다양한 생각 속에서 무엇에 의식의 불빛을 비출지 결정하는 주의력, 그리고 그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는 의지와 행동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생한 과정이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옵션과 불안을 무시하고, 약 60%의 확신만으로 먼저 발을 내디딜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행동이 선행되면 뒤따라 감정이 바뀌고, 마침내 정체된 생각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과거나 미래에 매여 허우적대던 유령 같은 관념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단단한 현실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진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하루 중 단 몇 가지라도 머릿속 생각이 던져주는 주저함과 핑계를 무시한 채, 지금 즉시 몸을 움직여 행동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불완전한 확신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내린 선택과 행동이 나만의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다시 나만의 진실을 구축한다. 생각이 만들어낸 가상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직접 부딪히고, 느끼며, 행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실용주의의 핵심이자, 우리가 관념에 삶을 빼앗기지 않고 진짜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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