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불안을 견디는 법보다 불안을 없애는 법을 배우며 살아간다. 불안이 찾아오면 그것을 관리해야 할 감정으로 여기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는다. 명상과 운동, 자기 계발과 심리 상담, 종교와 영성에 이르기까지 현대슬롯는 평온한 마음을 얻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제공한다. 그 결과 평안은 하나의 이상적인 심리 상태로 인식되고 있다. 걱정이 없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 평온한 인간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평안에 대한 추구는 역설적으로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낸다. 평안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마음이 불안한 순간, 우리는 단순히 삶의 문제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불안해하는 자신까지 2차적으로 문제 삼는다. 남들은 평온해 보이는데 왜 나는 이렇게 흔들리는지, 충분히 노력했는데도 왜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삶에서 비롯된 원래 불안 위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이 추가된다.
그렇다면 불안은 정말 제거되어야 할 감정일까? 인간에게 불안은 삶의 결함이 아니라 생존과 적응을 위한 기본적인 반응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중요한 것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두렵다. 건강을 걱정하고, 관계의 변화를 염려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갖게 된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따라서 불안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일 수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불안의 존재가 아니라 불안에 부여하는 의미이다.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순간 그것을 위험의 신호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불안하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흔들리면 삶의 균형까지 무너졌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불안하다는 사실과 삶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불안은 하나의 감정일 뿐이며, 한 감정이 삶 전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안 또는 평온한 마음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지금처럼 평안을 감정의 고요함으로만 이해하면, 삶은 끊임없이 평안을 깨뜨리는 사건의 연속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불안하고,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면 걱정하며, 미래가 불확실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평안을 위협한다. 이런 의미의 평안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평생 불안과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안을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안한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으며, 미래를 걱정할 수 있다. 다만 그 감정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불안이 존재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선택하고, 해야 할 일을 계속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면서 현재의 삶을 살아간다. 바다에 파도가 없어서 배가 안전한 것이 아니라, 파도가 있어도 배가 나아가는 것과 같다. 평안은 풍랑의 부재가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상태와 비슷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평안은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수용의 결과이다. 우리는 미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고, 타인의 마음도, 삶에서 일어날 모든 사건도 통제할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현재의 삶에 집중할 여지가 생긴다.
따라서 성숙한 평안은 불안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이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행동할 수 있고, 두려움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으며, 미래를 알 수 없어도 오늘의 선택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평안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불안 자체가 아니다. 불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불안을 인간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제거하는 대신 이해하며,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평안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평안은 불안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특별한 심리 상태가 아니다. 불안과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평안한 삶이란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삶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불안은 인간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불안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이다. 진정한 평안은 바로 그런 마음 자세에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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