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만 필요한 것들

나는 물욕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byWONA

나는 내가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명품 매장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일도 거의 없다. 짝퉁을 사 본 적도 없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비슷한 모양으로라도 손에 넣고 싶다는 마음은 내게 크게 작동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면 좋은 숙소와 좋은 식사, 조금 더 편한 이동에 돈을 쓰는 편이었다. 그때의 풍경을 제대로 보고, 낯선 도시에서 가능한 한 오래 편안하게 머무는 쪽이 좋았다.


그런데 여행 가방을 정리할 때면 늘 다른 증거들이 나온다.


휴양지의 쇼윈도에서 등과 허리 라인을 깊게 드러낸 모노키니를 처음 봤을 때가 그랬다. 한국에서는 절대 고르지 않았을 옷이었다. 내 몸에 어울릴지 충분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것을 샀다. 해변 가까이에서는 그 옷을 입은 내가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야시장에서는 현지 분위기가 잔뜩 묻은 귀걸이와 티셔츠, 원피스와 전통의상 비슷한 것들을 샀다. 일상에서는 물론, 여행 동안에 조차도 몇 번 입거나 착용하지도 못할 게 뻔한 것들이었다.


한번은 액티비티에 한창 들떠 있던 여행지에서 고프로를 사기도 했다. 나는 사진을 남기는 여행자가 아니다. 손에 꼽을 만큼 써 본 고프로는 한국에 돌아온 뒤 바카라꽂이 한 칸에서 먼지만 쌓여 가다 당근마켓에 팔리고야 말았다. 거금을 쏟아 그것을 사던 순간, 나는 좀 더 그럴듯한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산 물건들은 대개 정리함 깊숙이, 존재를 잊을 만큼 오래 방치되었다. 짐을 정리할 때면 가장 먼저 처분되는 쪽도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걸 보면 여행의 기억을 붙잡고 싶어서 산 것도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저 낯선 곳에서, 평소보다 조금 들뜬 마음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갖고 싶어 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내 기분과 꼭 맞는 물건처럼 보였다.


쇼핑을 잘하는 친구들이 종종 부럽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어느 브랜드의 무엇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어디에서 사야 좋은 조건인지, 어떤 물건을 오래 쓸 수 있는지까지 자연스럽게 안다. 사고 난 뒤에도 물건을 소중히 다루고, 몇 년이 지나도 자기 생활 안에서 잘 활용한다. 물건이 그 사람의 취향 속에 정착하는 모습은 괜히 멋있게 느껴진다.


내가 부러운 것은 친구들의 옷장이나 소비력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고 선택하고 그것을 오래 자기 삶에 남기는 능력이다. 친구들은 돌아온 뒤에도 잘 쓸 것을 골랐고, 나는 그곳에 있는 동안 갖고 싶은 것을 골랐다. 물욕이 없었다고 하기에는, 그 순간의 나는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내 욕망은 쉽게 상황에 물들었다. 낯선 도시, 더운 공기, 음악과 조명, 바로 다음에 할 액티비티 같은 것들이 나를 잠시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행지에서는 평소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고 믿었다. 몸매를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는 사람, 액션캠으로 추억을 남기는 사람, 낯선 시장에서 바가지를 쓰면서도 그곳의 전통의상을 사 입고 즐거워하는 사람.


돌아오면 그 역할은 자연스럽게 끝났다. 물건은 남았지만, 내가 사고 싶었던 것은 이미 지나간 기분이었다. 정리하면서도 크게 아쉽지 않았던 이유다. 그것들은 내 일상에 들이기 위해 산 물건이라기보다, 낯선 곳에서 잠시 다른 내가 되어 보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여행지에서만 필요한 물건이 하나쯤은 있을지 모른다. 돌아와서는 입지 않는 옷,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기념품, 다시는 쓰지 않을 장비. 쓸모가 다한 물건들 속에는, 그때만 가능했던 어떤 마음이 남아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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