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이케아 프락타(FRAKTA)
내가 살던 기숙사가 보이질 않았다. 마인츠대 캠퍼스를 찾은 지 6년 만이었고,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12년 후였다. 노후화로 철거된 모양이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이었는데.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나는 201호에 살았다. 월세는 210유로. 다른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보다 적게는 100유로, 크게는 200유로를 아낀 금액이었다. 대신 주방과 화장실이 공용이었다. 끼니를 챙길 때마다 주방으로 들어오는 다른 입주민들과 어색한 눈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중 한 녀석에겐 세탁세제를 빌려줬다가 세제의 절반을 날렸고,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난생처음 "남한이야 북한이야, " 하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남한이지, 두유 노 강남스타일? 샤워를 할 때마다 두툼한 타월가운을 입고 방 열쇠와 목욕 바구니를 들고 방을 나섰다. 씻는 도중에는 건너편 화장실 칸에 누군가 들락거리며 볼일 보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그때마다 몸이 움찔했다. 어서 씻고 방으로 피신해야겠단 생각으로 바디워시를 냅다 씻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불편한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지냈다.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이더라도 냉장고와 세면대가 따로 있다면서.
문제는 창밖 뷰였다. 처음 방에 들어오자마자 악 소리를 질렀다. 회색 블라인드를 걷으면 기숙사 쓰레기장이 내려다 보였다. 신기하게도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들 봉투를 세게 여민 걸까? 그래도 그렇지, 검은색 쓰레기봉투와 진녹색 쓰레기통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니 끔찍했다. 하지만 이미 계약서를 썼고 학기는 곧 시작할 텐데. 월 210유로라는 숫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짐했다. 201호에선 정말 잠만 자야겠다고.
마인츠에 있는 내내 블라인드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냈다. 햇빛이 아주 좋은 날에만 블라인드의 각도를 살짝 조절했다. 그때마다 방 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빛이 어찌나 구질구질해 보이던지.
여기저기 우중충함이 가득했다.
겨울이었고, 독일이었다.
쓰레기장 뷰를 보며 떠올린 독일어는 뮬트렌눙(die Mülltrennung)이었다. 초급 독일어 시간에 배운 단어였다. 뮬(Müll: 쓰레기)을 트렌넨(trennen: 분류하다)한다, 즉 분리수거를 지칭하는 합성어였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분리수거를 하는구나. 반가웠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독일은 뮬트렌눙도 대충 하지 않았다. 쓰레기 종류에 따라 쓰레기통 색상을 다르게 표시했는데, 유리병 하나를 버리더라도 투명, 갈색, 초록색에 따라 분류해서 버려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는 비닐봉지가 아닌 종이봉투나 신문지에 싸서 버려야 했다. 이래저래 지침이 많았다. 뭐든지 한 데 때려 넣어 버리는 어느 나라(하하)와는 딴판이었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직접 뮬트렌눙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솔직히 말해서) 조금 귀찮았다. 그러나 201호 열쇠를 넘겨받던 날, 푸른 눈의 하우스마이스터(Hausmeister; 관리인)가 뮬트렌눙을 비롯한 생활 수칙 안내문을 내게 건넬 때 그의 눈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읽었다. 너에게 딱히 편견은 없어, 하지만 그건 네가 하기 달렸지.
그래,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지.
당케쉔(Danke schön; 감사합니다)을 외치며 기숙사로 향했다.
독일은 내 로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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