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하지 않지만 에코백
죽음에 관심을 가진 건 최근의 일이다. 이전엔 죽음을 생각하는 게 곧 죽음과 가까워지는 거라 여겨 최대한 그 주제를 피하려 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삶을 찬양하는 것만이 올바르다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누구 하나 비껴갈 수 없는 결말이 죽음인데도, 필멸자라는 정체성을 무시하고서 그저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만 보려 했다. 오만했다 참.
죽음에 관한 편견이자 벽인 그 마음이 깨지기 시작한 건 결혼식만큼은 아니더라도 장례식에 갈 일이 한두 번 생기기 시작하면서였다.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애도의 표정과 마음은 어때야 할지 고민했다. 상주를 대신해서 펑펑 울까. 그랬다가 괜히 상주의 눈물샘을 자극하면 슬픔에 슬픔이 더해지지 않나. 아니면 일부러 밝게 위로해 주어야 할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면 어쩌지. 어려웠다. 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상주는 대체로 의연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는데, 그 상주가 친구였을 땐 유독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그렇게 씩씩할 수 있는 거야. 그런 척을 하는 거야 혹시. 그러다가 육개장 앞에서 눈물을 찔끔 새어 나오면 얼굴 가득 열감이 확 올랐다. 친구가 먼저 울면 몰라도 내가 먼저 우는 건 왠지 실례 같았다.
애통하고 싶다. 친구를 위해. 나를 위해. 인간을 위해.
제대로 된 표정과 말로 위로하고 싶다. 친구를. 나를. 삶을.
장례식장을 나올 때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죽음에 관한 생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게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며 도리어 삶을 향한 관심도 단련하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다 보면 좀 더 제대로 울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죽음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