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환경운동이었으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노팅힐 쇼핑백

by프로이데 전주현

어느 날, 화장실 발매트 위에 수건이 무더기로 나와 있었다. 남편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빨래 실수가 있었단다. 소파 위에 올려두고 이불처럼 썼던 파란색 담요와 수건을 같이 빨아서 이염이 된 것이었다. 남편은 이참에 수건을 몇 개 사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수건을 집어 올렸다. 하얗던 수건은 이제 퍼런 수건이 되어 있었다(파랗다고 하기엔 탁하고 낡은 느낌이 가득했으니 퍼렇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수건 하단부 중앙에 수 놓인 스누피만이 여전했다. 이전의 스누피가 하얀 눈밭을 거닐었다면 지금의 스누피는 퍼런 산호초 사이를 헤엄치고 있달까. 그것 말고는 아직 올이 살아 있어 쓸 만한 수건이었다. 버리기엔 아까웠다. 여기저기서 선물로 자주 주는 물건이라 그런가, 직접 사서 쓰려는 수건은 은근히 비싸게 느껴졌다.


퍼런 수건으로 머리카락 끝 물기를 닦아내며 화장대에 앉았다. 관리라 부르기엔 조촐한 나의 스킨케어 시간이었다. 대용량 스킨병을 꺼내자 그 밑에 깔려 있던 화장품 샘플들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비건, bio, 친환경, 어워즈 수상 등... 샘플들에는 각종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쓰던 화장품만 쓸 거면서 사은품으로 주는 저 샘플들을 굳이 받아가지고 온다(그러다가 대청소 겸 서랍을 뒤집어엎을 때 다 버리고 말고).


무얼 버리고 무얼 간직할까.


퍼런 수건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질문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물건들이 참 많았다. 제 기능을 잃었는데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몇몇 보였다.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데 한 무더기 갖고 있는 것들도 제법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버렸겠지(난 보통이 아닌가 보다).


남편의 빨래 실수가 블루워싱(시사용어인 블루워싱과는 상관이 없다. 그저 '퍼렇게 물들이는 행위'란 의미에서 블루, 워싱)이라면 에코백을 이야기할 땐 그린워싱(greenwashing)을 빼놓을 수 없다. 언뜻 들으면 싱그럽고 아름다울 것 같은 표현이지만 그 뜻은 꽤 날카롭고 냉소적이다. 그린워싱은 실제로 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도 환경적인 척 위장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태도와 행동을 일컫는다. 제지업체가 벌목으로 환경 파괴를 하면서도 재생지 활용이라는 경영 사례를 전시하고(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내가 가죽 가방 대신 에코백을 메고 다니면서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여행 중에 에코백을 여러 개 사 모으며 낭비하듯이.


그럼 이쯤 되어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마음으로 판에 박힌 대사를 읊어 볼까 한다.


"그럴 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재미있게도 위 변명은 에코백 산업 자체를 논할 때도 써봄직한 표현이다. 태초(?)의 에코백은 제작자도 정말 에코하려고(?) 만든 가방이었고, 소비자도 그에 화답하는 방식으로 구매하는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선한 의도와 의사 결정(소비 결심)에 반하는 결과가 나왔다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에코백 생태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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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와 외국어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이 지닌 힘을 믿으며,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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