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잘 나오던 학생이 무슨 일인지 결석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나타난 그 학생은 얼굴이 핼쑥하고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난 뒤, 학생이 조용히 다가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학교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학생은 그동안 겪은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딸이 임플란트 수술을 잘못 받아 양쪽 볼이 푹 꺼져버렸다는 겁니다.
병원에 항의해 보았지만, 병원 측에서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고 주장하며 바카라임을 회피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딸은 엄마인 학생에게 눈물로 하소연했고, 결국 법적 소송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부터 딸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충격으로 끼니도 거른 채 방에서 울기만 했습니다. 학생은 딸을 위로하고 집안일을 돌봐주느라 딸의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학생은 소송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다시 학교에 나올 생각이었지만, 딸은 이 상황에 학교 타령을 하냐며 화를 냈습니다.
"그동안 너희들 가르치고 장사하느라 평생 못 배운 한을 누르고 살았는데, 이제야 학교에 나와 공부하니 엄마는 너무 행복하고 사는 보람을 느낀다. 네 일은 황당하고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싸움 때문에 엄마가 학교까지 그만둬야겠니? 엄마는 학교 못 나가면 우울증 걸릴 것 같아. 나는 학교에 다닐 거야."
"엄마는 왜 그리 이기적이야? 내가 이 지경이 됐는데 엄마 생각밖에 안 해?"
딸이 울부짖으며 되받아쳤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마저 어머니를 거들었습니다.
"엄마, 그 나이에 학교 다녀서 뭐 해? 그깟 졸업장 따서 어디 취직할 거야?"
학생은 기가 막혔습니다.
"꼭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평생 고생만하다가 늘그막에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살아야겠니? 너희들이 이러니 난 너무 서운하다."
"엄마, 지금 이 상황에서 공부하겠다고 하는 엄마를 난 도저히 이해 못 하겠어."
아이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햇지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가 정말 이기적인 엄마인가? 남편은 일찍 떠났고, 평생 자식 위해 사느라 정신없이 돈을 벌어서 다 가르치고 출가시킨 지금에야 비로소 내 삶을 살며 죽기 전까지 공부해보겠다는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가? 평생 못 배운 한이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혀 있는데, 지들이 그걸 알기나 할까? 평생 나를 위해 살아본 적 없던 내가, 나를 위해 공부 좀 하는 게 정말 이기적인 건가?
밤새 뒤척이며 억울함과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았지만, 아침이 되자 결국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학교 그만 두고 딸의 시간에 온전히 자신을 맞추기로요. 괜히 자식들과 갈등을 일으켜봐야 마음만 괴롭고,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학생은 오늘 마지막으로 교실에 나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따님의 사정도 이해는 가지만, 늦은 나이에 비로소 자신을 찾아가는 어머니의 날개를 꺾어버린 상황이 자꾸만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딸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스스로 날개를 접어버린 어머니의 가슴속에, 끝내 피우지 못한 배움의 꽃송이가 시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씁쓸하게 웃던 그 눈빛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식들은 늘 부모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부모가 한 명의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려 할 때는 왜 이토록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요. 평소에 부모가 간섭하면 "우리가 알아서 한다"며 선을 긋곤 했던 자식들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부모 역시 자식을 독립시킨 만큼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마땅한게 아닌가요. 딸의 억울하고 황당한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엄마를 이기적이라고 몰아세우며 그 작은 날개마저 꺾어버린 상황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교실을 떠나는 그 학생의 뒷모습이 유독 쓸쓸해 보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또다시 자신을 지워낸 어머니. 덩그러니 비어버린 교실 바카라상 앞에서, 언젠가 그 학생이 다시 가방을 메고 환하게 웃으며 돌아올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