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내 꿈

by무하

오늘은 우리 교실 학생의 기막힌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 학생의 글을 제가 옮겨보겠습니다.

- 내 인생은 여섯 살부터 시작되었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일을 시켰다. 나도 놀고 싶다고 하면 나를 혼냈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왜 놀면 안 돼?"

친구들이 물었지만 나는 일만 해야 했다.

둘째 동생이 태어나고부터는 그 동생을 업고 다녔다. 동생을 업고 집안일을 했고 빨래도 해야 했다.


그날은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엄마가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해오라고 했다. 나는 광주리에 빨래를 담아 이고 시냇가에 갔다. 꽁꽁 언 물을 돌로 깨서 손을 불어 가면서 빨래를 했다. 집에 왔더니 엄마는 빨래를 깨끗이 하지 못했다며 다시 해오라고 마당으로 던졌다. 나는 울면서 마당에 던져진 흙 묻은 빨래를 머리에 이고 다시 빨래를 해왔다. 언 손을 호호 불며 빨래를 해왔는데, 이제는 밥을 하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무서웠다. 밥을 하기 싫다고 했다간 또 불벼락을 맞을 것 같아서 가마솥에 쌀을 씻고 아궁이로 불을 때서 밥을 했다. 엄마는 밥이 죽밥이 됐다고 밥상을 통째로 마당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밥도 먹지 못하고 울면서 자야 했다.

잠이 들 때면 저 엄마가 나를 낳아준 엄마가 맞나? 혹시 새엄마가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새엄마인지 친엄마인지 그건 기억에 없다. 그냥 여섯 살 때부터 기억나는 엄마는 항상 나를 혼내고 윽박지르고 무서운 엄마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산더미처럼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친구들이 학교를 가도 엄마는 나를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학교에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보나마다 불벼락이 떨어질 게 뻔해서 친구들 학교 가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 한 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동생은 그렇게 예뻐하면서도 나에게 돌아오는 눈길은 차갑고 쌀쌀맞았다.


그렇게 열 살이 되었다. 이모부가 와서 엄마와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나를 데리고 임실로 간다고 했다. 그 집에 가서 나는 그 집 식모가 되어 일을 해야 했다. 집안일을 다 끝내고 밤이 되면 그래도 그런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일주일째 되는 날, 엄마가 보고 싶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그 집에서 도망 나왔다. 우리 집을 어떻게 가는지 몰랐지만 그곳이 싫어서 무작정 나왔다. 나는 돈도 없어서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길 따라가다가 버스가 가는 길만 걷고 또 걸었다. 너무 배도 고팠고 힘들었지만 그냥 앞만보고 걸었다. 30리가 넘는 길을 걷고 걸어서 집에 겨우 밤이 되어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니 엄마가 나왔다. 나는 울면서 엄마, 하고 불렀다. 엄마는 전혀 반가워하지도 않고 왜 왔느냐며 쌀쌀맞게 대했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에 왔는데 엄마는 나를 또 다른 곳으로 보낼 궁리만 했다.


며칠 후 엄마는 나를 더 멀리 보냈다. 그곳은 너무 멀어 찾아올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를 내 마음에서 지웠다. 내가슴 속 엄마는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덩이 같았다. 이후로는 엄마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집주인 말로는 엄마가 일 년 치 내 품삯을 미리 가져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돈구경도 못하고 일만 했다.


그러다가 옆집에 사는 할머니를 알게 됐는데, 그 할머니가 딸이 다니는 공장에 다녀보라고 했다. 나는 일 년 치 일을 다 해주고 나서는 할머니 딸이 다니는 공장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공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그만 방을 얻어 자취를 하면서 공장에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가족과 연락을 끊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는 나를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나는 엄마에게 돈을 주고 또다시 거처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남편을 알게 되었고 남편과 스무 살에 결혼했다.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난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 후로도 엄마는 수시로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엄마는 돈을 요구하면서도 항상 너무 당당했다. 나는 엄마에게 돈을 주긴 싫었지만 남편은 부모인데 어떻게 매정하게 할 수 있느냐며 엄마에게 돈을 주곤 했다.


엄마는 죽기 전까지 나에게 돈을 요구했고 지금은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의 정도 아버지의 정도 모르고 살아왔다. 사랑을 받아보기는 남편이 처음이었다. 둘 다 열심히 일한 덕에 그럭저럭 살림이 펴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글이 배우고 싶어졌다. 나도 남들처럼 떳떳이 글을 읽고 쓰고 배우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적극 찬성했고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시니어 학교에 다닌다. 다 나처럼 제때 공부하지 못해 한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특히 더 정이 간다. 교실에 들어서면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꽃이 필 정도로 좋아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시간이 언제 간지도 모르게 빠르게 흘러간다. 굽이 굽이 서러운 길 돌아와 이제야 내 인생의 봄을 맞았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다니. 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니! 늦깎이 학생이 된 지금에야 다시 찾은 내 꿈, 다시 찾은 내 이름.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이 학생의 글을 보니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친엄마가 아니고 계모아니냐고. 그 학생은 엄마가 친모인지 계모인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냥 엄마들은 다 그러는 걸로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니 엄마도 엄마이지만 그 아버지는 왜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 학생을 보며, 나는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나, 우리 엄마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셨나를 느꼈습니다. 어쨌든, 늦게라도 자신을 위해 공부를 시작한 그 학생에게 진심의 응원을 보냅니다. 나이는 들었어도 가슴 속에 감추고 있었던 꿈 하나가 서서히 자리를 잡고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 숙연해집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