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경계에서 피어나, 소유하지 않는 공존’에 담은 의미
오전에 흐렸던 하늘은 이내 비를 떨궜고, 숲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물기를 머금었다. 빛이 닿는 길목에서부터 길쭉하게 하늘로 뻗어있는 나무들은 저마다의 간격으로 늘어서서 같은 듯 다른 숨을 쉬고 있었다. 습한 공기는 지니고 있는 감각을 섬세하게 깨우고 주변을 돌아보게 했으며, 그곳에서 들려오는 푸른 세상 속의 깊은 이야기들을 듣게 했다.
많은 세월을 거쳐 완성된 질서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다정한 이야기들을.
오늘처럼 비가 내려서 습한 공기가 숲 속을 떠다니는 날에는 이끼는 몸을 길게 늘린다. 기억 속, 어느 날도 오늘과 닮아있다. 그날, 이끼는 나무의 거대한 몸 위로 손을 내밀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손을 나무 위로 뻗어 자리를 잡고 이내 온몸을 편안히 맡겼다. 그리고 세월 풍파로 갈라진 나무의 거친 틈 사이사이를 메꾸는 초록 융단이 되어, 마르고 갈라진 틈을 가리고 거칠어진 결을 따라 포개어졌다.
나무의 흉터와 거친 결 위로 이끼가 내려앉았을 때, 나무는 이끼가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아무 말없이 내어주었고, 이끼 역시 그곳에 조용히 머물렀다.
이끼는 나무의 영양분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공기 중의 습기, 안개, 빗물, 먼지 등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끌어온다. 이끼의 존재가 나무에게 이로울 때도 있다. 이끼가 흡수해 놓은 습기는 나무껍질의 습도를 유지해 주고, 이끼가 머물러 있는 공간은 나무에게 이로운 미생물이나 작은 곤충이 살 수 있는 터전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이끼가 너무 두껍게 덮여서 나무에게 해가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이끼의 고의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생태계의 생리일뿐. 자연의 생리를 숲에 사는 그들이 어떻게 거스를 수 있을까. 거대하고 위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서 살아온 우리에게,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말은 자연이 건네는 바람과 침묵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자세이자, 태곳적부터 내려온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렇게, 그들의 공생에는 집착과 침범이 없다. 이끼는 그저 나무의 겉면에 살포시 얹혀 나무를 지배하거나 해치지 않고, 푸르름으로 존재를 증명해 내면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숲이라는 작은 우주를 더 깊이 있고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내가 머무는 곳은 나무와 숲의 공기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숲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는 나무의 외부와 맞닿아 있는 경계.
나는 그곳에 머물 뿐, 나무를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고, 나무의 가장자리 경계를 지키면서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안다.
서로의 영역과 고유함을 침범하지 않는 '적절한 거리'를 지키는 자리에서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무를 내 방식대로 바꾸거나 내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집착이나 욕심에서 벗어나 있다.
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온전히 피어나기 위해.